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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전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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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미국이 경제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냉전은 고조에 달해 공포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의 원폭실험은 미국의 핵 보위 안전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스탈린은 군사력으로 그의 왕국을 확대시키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공산주의가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미국 주민들은 날로 불안하여 민주적 생활 양식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빌리 그레함은 하나님의 세계 경륜이라는 견지에서 당연한 문제점들을 정확히 설파했다.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는 예정된 3주일에서 8주일로 연장했다. 9,000석으로 확대한 대회장은 언제나 초만원을 이루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1917년 뉴욕전도대회 이래 가장 큰 규모임에 틀림없었다.

14년 후에 이 청중이 15배로 늘어날 줄은 빌리 그레함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 1963년의 로스앤젤레스 전도대회의 마지막 날에는 13만 4천의 군중이 운집하고 2만명 이상이 밖에서 설교를 듣는 대 성황을 이루었다.

매스콤이 크게 떠들고 사방에서 찬사가 그레함에게 홍수처럼 밀려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전도대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예나 명성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 모든 영광이 주님에게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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