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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전도의 野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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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면 호랑이,사자같은 맹수들이 유달리 온순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조차 지르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순한가? 공원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온종일 사냥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직원들이 사냥하기 쉬운 가축을 여기저기 풀어놓으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소나 염소를 잡는 일은 그들에게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에 비해 훨씬 쉽고 빠른 일이었다. 하루하루 가축 잡는 데 재미를 붙이면서 야생동물 사냥은 점점 멀어지고 손쉬운 먹이만 노리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맹수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순한 소나 양처럼 되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오늘날 전도의 야성을 잃어버린 교회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교회는 힘든 불신자 전도는 포기하고 손쉬운 기존 신자로 교회 자리 채우는 데 연연하는 약한 교회가 된 것 같다. 과거에 사자처럼 포효하며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세계를 누비며 목숨걸고 영혼들을 찾던 전도자들,‘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일본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선배 신앙인들의 전도적 야성을 우리는 잃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교회들이 자기 만족에 빠져 있고 너무 많은 목회자들이 손쉬운 교회 성장 비결을 좇고 있고 너무 많은 신자들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새 신자 소개 시간에 박수나 치고 있다. 목사와 장로중 평생 한번도 전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68%나 된다는 안타까운 보고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고기처럼 되어야 한다. 물고기의 신비는 바다에 살면서도 소금에 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물고기의 생명은 아니다. 물고기의 생명은 바닷속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도피성이 아니다. 거룩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도 아니다. 우리는 안전하거나 거룩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산다. 예수님도 세상에 침투해 오셨다. 그의 삶은 평생 하나님 없는 이방세계에 대한 침투의 삶이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마11:12). 그는 일생 전도의 야성으로 살았고 그 야성은 초대교회로 이어졌다. 손쉬운 교회성장 비법은 없다. 안일한 기존 신자 전도는 교회의 생명을 죽이는 결과만 초래한다. 전도의 야성을 회복하자. 그것만이 침체에 빠진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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