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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체와 성경 (욥 2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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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닷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본 장은 천문학적으로 대답한 말씀인 바 성경과 천체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3절은 남을 돕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는 두 길이 있습니다. (1) 기력이 없는 자를 도와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많은 분은 육체가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2) 사회적으로 배경없는 자를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의 힘입니다. 지식으로도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혜로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말씀에 있습니다. 욥은 노골적으로 빌닷에게 묻습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자에게 어떤 종류의 구원을 베풀 수 있는가 (2절)라고 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고, 어두움에 싸여 있는 자에게 그가 어떤 조언을 했는가 그가 가르쳤던 사람에게 참되고 건전한 지식을 충분히 알렸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빌닷은 욥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욥을 설득시키고 가르치고 위로하는 척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어떤 실수를 바로잡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욥으로 하여금 그의 고통을 참거나 그의 말에서 유익함을 얻게 하거나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4절에 “뉘 하나님이 네게서 나타났느냐”라고 했는데 이는 롬 11:34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모사가 되었느뇨”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선을 행했어도 하나님에게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참되고 선한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합당한 것이 아니며, 또 어느 때나 적절한 것이 아닙니다. 욥과 같이 초라해지고 꺾어져 슬픔에 잠겨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광대함과 위엄보다는 그의 은혜와 자비를 알려주어야 하며 전능자의 두려움보다는 위로를 가르쳐야 합니다. 즉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말씀을 적절하게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도 진리의 말씀을 분류하는 것을 옳게 배워야 하며, 하나님께서 슬프게 만들려 하지 않을 자들을 빌닷처럼 슬프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5-6절에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음부의 밑바닥까지 밝히 드러납니다. 사람의 마음과 음부를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주 전체를 내다 보십니다. 빌닷이 말한 “어떻게”라는 질문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가장 잘한 답변이 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 논쟁을 벌였던 촛점이 매우 달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한 가지 주제, 곧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과 능력에 대해서 모두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모든 논쟁이 이같이 “한 마음과 한입으로” 모든 사람들의 주, 그리고 우리의 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롬 15:6) 것으로 끝난다면 좋을 것입니다. 7절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고 했습니다. 중세시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바른 과학자들을 탄압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자동설을 부인하고 박해했습니다. 그 때에는 지구 중심으로 우주가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해, 달, 별들을 사람을 위해 창조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가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운행된다고 믿었고, 이를 교리화 하여 바르게 말하는 과학자들을 탄압했던 것입니다. 이 때 교회는 천문학적 지식을 무시하고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를 잘 해석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렘 33:22에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별을 다 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 147:4에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잠 25:3에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라고 했고, 욥 11:7에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렘 31:37에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없으며, 아래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느냐”라고 했으며, 고전 15:41에 “하나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르도다”라고 했습니다. 수 10:12-13에 하나님은 태양을 그 자리에 머물게 했습니다. 사 38:7-8에 해의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했습니다. 마 2:1-11에는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과 그 섭리의 오묘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 구름과 비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비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합니다. 성경은 동기를 말하고, 과학은 결과를 말합니다. 구름 속에 보관된 물의 무게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그 밑에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빽빽하게 고였던 물은 분수처럼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름 속에 스며 들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기에 땅에 풍족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는 작은 비 뿐만 아니라 큰 비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9-10절에 하나님께서는 경계를 그으셨습니다. 바다와 육지와의 경계선을 지으셨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경계까지 지정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 그것을 둘러 싸는 구름때문에 누구도 하나님께 다달을 수 없습니다. 그는 거대한 바다도 지배하시며 하늘의 불기둥도 하나님 앞에서 떱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진정시키고 거만함을 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쌘 뱀을 찌르십니다. 14절은 마지막에 놀라운 경탄으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행사의 시작점이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의 출발이요 그 속에 거하고, 또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자손들에게 그 스스로를 알리시는 행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발견물들을 시인하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욥 자신이 말했고, 또 빌닷이 말했던 하나님의 행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소식,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드러나지 않은 그 능력의 깊이를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급해 놓은 것은 그의 행사의 일부분, 적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과, 하나님의 본체에 비할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것과 우리가 발견한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전체와 비교해 볼 때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창조의 일부분만 알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과오로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분 밖에 모릅니다. 우리는 부분 밖에 예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라고 경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들어 알고 있는 것은 심히 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해력과 능력은 약하고 얕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 지식을 통하여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지식을 오용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참 뜻을 조금은 알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현상과 성경은 결코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 구원에 관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를 성서로 올바로 읽고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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