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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땅 (수 0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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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 여호와의 천사장이 나타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기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섰는 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격된 말입니까 여기 말하는 거룩한 땅은 결코 어떤 특수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땅의 토질이 좋아서 성지인 것도 아닙니다. 산이 높아 웅장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옛날에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입었으며 “너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는(출 3:5) 음성을 들었으며 여호수아도 여리고 성 근처에서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잡초가 우거진 광야는 물리적으로 결코 거룩한 땅이 될 수 없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그곳을 왜 거룩한 땅이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까

1. 하나님을 만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지란 지리적이나 혹은 물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비록 인가 없는 빈 들이나 또는 기계 소리가 요란한 공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이 앉은 이 자리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소경 바디매오가 하나님을 만난 거룩한 땅 여리고 성에서 소경으로 구걸하던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고 구걸하던 그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에게 여리고인 그 장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나본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땅이 아무런 의미 없는 땅이겠지만, 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땅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아무런 관심없이 지나가지만 그만은 결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성지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영의 눈이 떠지는 성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의 거룩한 땅 이 앉은뱅이는 소아마비를 않다가 앉은뱅이 된 자가 아니요, 중풍으로 앉은뱅이가 된 자가 아니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가족의 등에 엎혀 성전 미문 앞에서 예배 드리러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성령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던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가다가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옷자락을 붙들고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없는 자였습니다. 행 3:6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이르노니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앉은뱅이의 무릎이 펴져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없이 지나치는 성전 미문이었지만 그에게는 생애 최대의 의미를 주는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의와 좌절 속에서 일어나지 못하여 영적으로 앉은뱅이 되신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영적으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상여 메 가던 과부 아들이 예수 만남으로 살아났으니 그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나인 성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자를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독자는 청년이 되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며 또한 앞길이 창창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아들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입관하여 묘지를 향해 상여는 떠나고 그 뒤에서 그 어머니는 목 놓아 울었습니다. 때마침 주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이 광경을 보시고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사 상여에 손을 대시며 눅 7:14에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명하시니 그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공동묘지로 가는 길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나 나인 성 과부와 그 아들에게는 그곳이 최대의 의미를 주는 성지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심령이 죽은 자가 있으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서 심령이 살아나는 이적이 계시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거룩한 땅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자기를 발견한 곳이기에 거룩한 땅입니다 여호수아가 천사장을 만나뵘으로써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을 받기 전에는 참 자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아를 옳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죄 많은 괴수인 자아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아를 정확하게 발견하고 평가해야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그릇인 줄을 알아야 자기 분수에 알맞게 처신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금그릇, 은그릇, 토기그릇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밥은 밥그릇에, 국은 국그릇에, 반찬은 접시에 담는 것이 밥상 차리는 순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거룩한 땅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자기 은사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인생에 관해서는 내일 일도 모르면서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지냅니다. 여호수아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하신 것은 네 자신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너무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 속에는 자기가 의지하는 것을 믿지 말라는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자기 자랑, 권세 자랑, 지식 자랑, 돈 자랑, 건강 자랑, 세상 모든 자랑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도 “나는 지금 양치는 자로 있으나 그래도 애굽의 최고 학부를 나왔다”, “나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애굽의 왕좌도 내 것이었다”, “나는 애굽의 군사학 문무를 모두 닦은 용사다” 라는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80세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자랑을 버리게 되니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사울도 나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화생이며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자라고 육신의 자랑을 했는데, 그 때에는 신도를 죽이는 살인자 노릇을 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 후 육신의 이 모든 생각을 배설물을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사울은 예수님의 사도가 되어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아를 바로 깨닫고 육신의 생각과 세상의 자랑을 버려야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거룩한 땅을 예비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사람들은 절망에 처하게 될 때 “내가 설 땅이 어디냐”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참한 지경에 내려간다 할지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땅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뵙기 원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땅을 주십니다. 옛 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서에도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느니라”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곳은 천상에도 지상에도 없습니다. 암 9:23에 “저희가 땅을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요,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말하였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설 땅이 없다면 그 보다 더 큰 비극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많은 땅과 큰 집을 지어도 주님 재림의 날에 내가 설 거룩한 땅이 없다면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한 땅은 돈을 가지고도 살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한 땅은 인간의 공의나 업적으로도 구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수양이나 고행으로도 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믿음으로만 예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 지팡이, 자기가 믿는 신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마다 출생지가 다르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다릅니다. 이 자리가 곧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통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가 하나님을 만난 다음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었듯이, 여러분 모두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심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여지는 그릇이 되시기를 바라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주 앞에 바로 설 수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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