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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경륜 속에 사는 인생 (렘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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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활에는 어떤 욕망이 끌려서 움직이고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욕망을 품고 이것을 실현해 보려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은 그 곳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도리어 큰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희망과 계획의 계기를 찾아보면 퍽 불순한 동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원이란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인지 알 수 없습니다. 허영과 오만과 육체적 탐욕으로부터 시작된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인생은 점점 더 추악한 모순과 커다란 과오로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정하고 계획을 세울 때에, 절제와 인내와 순결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그 뜻에 들어 맞추는 것이라면 그것은 견실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희망하고 가증한 욕망의 계획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 실현될 것이며 여기서 참된 인생의 역사가 전개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1. 모세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출 6:28-7:6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고하라 모세가 여호아 앞에서 고하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하여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네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지극히 어려운 뜻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2. 욥의 생애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 셨습니다. 욥 23:10-14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작정하신 뜻대로 욥을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3. 예레미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렘 1:5에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모진 고난을 통하여서도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4.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뜻을 두셨 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높아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께서 영광 중에 계실 때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주께서는 이때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모른다 나의 마시는 잔을 너희도 능히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너희가 능히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진정으로 구할 바를 몰랐던 것입니다. 저들은 남을 멸시하고 자기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했고, 남을 밀쳐내고 자신들이 영광의 자리에 앉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받을 십자가의 고난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문책하셨습니다. 이들의 공허한 생각, 허망한 욕망적 욕구는 예수님의 엄한 사랑의 말씀에 의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물어보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충성을 다했으며 거룩한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5.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반드시 고난을 많이 받고 장로와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당하고 삼일만에 부활하리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이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붙들고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하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기대는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영광의 메시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계시기를 바랐던 것으로 이 기대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점점 눈이 열리고 훈련을 받으므로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요 21:18에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임의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은 곳으로 데려 가리라"는 말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신앙의 순교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6.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인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를 박해하고 저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잡힌후에 자신의 열렬한 소원은 뿌리채 뽑히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주님 앞에 엎드려 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 경험을 바울은 갈 1:15에 "내 어미의 태로부터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내 마음에 그 아들을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예레미야의 경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회심의 경험에서 자기의 생이 모태에서 날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들어가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자기의 생을 통하여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것을 감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사도 바울의 일생에 힘차게 살아 움직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을 생각할 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흥분하고 낙심하고 울고 안타까와 하면서 몸부림쳤으나 지금에 와서 사도 바울과 같이 네 받은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임을 자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그 뜻을 알아 그대로 준행하기에 애썼던 것입니다"(고전 1:1, 고후 1:1, 엡 1:1).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했습니다. 골 1:9-12에 "이로써 우리는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게 하시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다윗도 시 143:10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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