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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해명하는 욥 (욥 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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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은 완전무결한 법정 진술입니다. 여기서 욥은 자기가 제시한 사전의 확증을 정밀하게 다시 조사한 다음에, 그리고 과거에 의로운 축복받은 상태와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대조시킨 후에 이제 마지막 증언을 진술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욥의 마지막 항변은 자기의 무죄선언입니다. 이전에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텅 빈 법정에서 자기의 말이 허공을 맴돌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절망적 상태에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끝까지 필사적으로 자기 변호를 계속합니다.

1.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랐습니다(1-4절) 욥은 그를 죄로 이끌어 갈지도 모르는 어떤 유혹에 대비해서 그것을 보기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눈을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육신의 정욕을 대항했습니다. 그는 음행으로부터 이웃 사람의 아내를 더럽히는 일로부터 떠나 그 자신을 정결케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떤 여인과도 음탕한 관계를 맺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는 첩이나 정부를 두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의 아내가 현명하거나 훌륭하거나 친절한 여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극히 성실하게 부부의 침실을 지켰습니다. 처음부터 남자는 오직 한 아내만을 처하고 그녀만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욥은 건실하게 이 제도를 지켰습니다. 그것을 위배하려는 생각을 혐오했습니다. 욥은 부정한 생각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욥은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행하려고 했습니다. 아울러 그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기에 추호라도 마음으로 죄를 지으려고 도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바였습니다.

2. 욥은 공의의 법을 따랐습니다(5-8절) 욥은 세상의 허영심과 덧 없음과 허위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마음이 그의 눈을 따라가지 않았고 더러운 세속에 휩싸이지 않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주위에서 세상의 것을 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고 불결한 것은 보지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마음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6절). 세상 법이 욥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 13:18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그 행위가 정직했고 의로웠으며 허탄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결코 궤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법으로는 결코 그를 정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세상 법에 의해 그가 고난당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3. 부부에 대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9-12절) 신 22:22에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아내와 간통한 간부는 죽이라고 합니다. 잠 6:24-25절은 지혜의 왕 솔로몬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준 부부 외에 색을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색을 탐하는 것은 불을 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지옥은 불못입니다. 세상에서 정욕으로 타는 자는 그 사람이 곧 지옥입니다. 욥은 음행의 죄를 매우 혐오하고 있습니다. 그가 첩을 두지 않음으로써 그의 부부의 칭찬을 더럽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는 이웃 부부들의 침상을 해하는 일은 어떠한 것도 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욥은 음란죄에서 매우 깨끗했습니다(9절). 그는 결코 순결하지 못한 뜻을 품거나 상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이웃의 문을 엿보아 남편이 부재 중에 그 선한 사람이 집에 없는 때에 그의 아내를 타락시킬 기회를 찾으려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죄를 심히 두려워했으며 그것이 사악함을 깨닫고는 매우 치를 떨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런 중죄를 범했다면 그의 가족들이 극심한 치욕을 당하여도 마땅할 것입니다(10절). 그러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을 당하였기에 더욱 괴로웠고 답답했던 것입니다.

4.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도 바로 대했습니다(13-15절) 욥의 종들은 욥이 좋은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욥에게 불평했을 때 욥은 종들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하여 언제나 그들의 정당한 이유를 들었습니다(14절). 그는 그의 지위에 대해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주인과 종이 동등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5절). 사람들이 상관을 섬기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종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기에는 어려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부패한 인간으로서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기 쉽고 인격을 존중하기 어렵습니다. 욥이 그의 종들을 이처럼 친절하게 대한 이유들은 어떤 것이엇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그의 재판관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창조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하여 종들에게도 관용하였던 것입니다.

5. 이웃에 대한 욥의 태도입니다(16-23절) 가난한 사람들이 욥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언제나 그들의 궁핍을 도와주었습니다. 과부의 눈이 욥 때문에 결코 실망한 적이 없었습니다(16절). 그는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단지 그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빈궁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그의 양털로 그 몸을 더웁게 입혀서 그로 하여금 욥을 위하여 복을 빌게 했습니다(19-20절).그는 고아를 결코 압제하지 않았고 도움이 없는 자들을 파멸시키거나 손해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21절). 만약 그가 이러한 일들 중에서 어떤 경우에서든지 그의 이웃에 대하여 죄악을 범하기 보다 욥은 그의 어깨가 어깨뼈에서 떨어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재앙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외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몹시 슬프게 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도록 했기 때문입니다(23절). 욥은 가난한자를 인격적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신 14:29, 24:17에 과부와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 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욥의 태도는 축복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신앙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하여 연단하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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