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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음의 소리 (시 1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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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민중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당시 서구의 교회들이 외면했습니다. 민중은 빵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배고픔 속이서 빵을 찾아나선 민중의 소리는 성서에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쫓김을 받아 브엘세바 사막을 해메던 하갈 여인과 그 아이 이스마엘은 물을 찾아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학정 밑에 400년간 배고픔으로 지내온 이스라엘 민족도 울부짖는 호소를 하나님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늘에게 자유를 주신 것을 출 2:2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142:6에서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리라”고 했습니다. 민중의 부르짖는 소리는 빵도 자유도 아닌 참 삶의 부르짖음입니다. 삶속에 엄습하는 좌절과 절망, 그것도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무한한 공허, 이 공허로부터 영혼을 구원해 달라는 영적 구원의 호소였습니다. 시 142:7에서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영국의 재상 토마스 모어는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민중의 소리를 교회는 듣지 못하고 있고 공산주의는 듣고 있다고 비평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그들의 이상 국가인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날에는 빵이 주어진다고, 자유가 주여진다고, 이념이 주어진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빵을 찾아, 자유를 찾아, 영혼의 구원을 찾던 많은 수십억의 인구가 공산주의를 선택하여 공산 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공산주의의 이상은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공산주의 사회에서 제각기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민중의 호소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들에게 참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애굽 왕과 그의 신하들로부터 당하는 고통의 소리를 하나님은 듣고 계신다는 사실이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태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왕도, 지도자도 다 외면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듣고 계시기에 세상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한없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막스는 즉각적인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빵을, 자유를 구하는 자에게 혁명을, 영혼을 구하는 자에게 이념을 즉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하나님은 배고픈 자에게 즉각적인 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구하는 자에게 즉각적인 해방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영혼을 울부짖는 자에게 그가 원하는 신앙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나 성서는 증언합니다. 목이 말라 애타는 하갈과 이스마엘 앞에 물을 갖다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서의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밝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눈”을 밝히셨다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 즉, “신앙관”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불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하갈과 이스마엘은 목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서는 말합니다. 자유를 구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자유를 갖다 주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대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광야 40년의 고통 말입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70년의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 고통의 경험을 거치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가나안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자유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에게 왜 하나님은 고통을 주셔야만 했습니까 진정한 자유는 고통을 아는 신앙인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서는 말합니다. 영혼의 구원을 울부짖는 소리 앞에 하나님은 “영혼의 구원”을 하나의 완성품으로 선물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대로 아기 예수를 주셨습니다. 로마의 학정 밑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민족, 하루 아침에 로마를 넘어뜨리고 새 왕국을 건설하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 민족 앞에 하나님은 가장 무기력한 어린아기 예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지시는 고난받은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외면한 그 부르짖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대한 영원한 구원을 약속으로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약속을 믿음에서 우리의 눈이 밝아질 것이며, 눈이 밝아질 때에만 물이 어디에 있는지, 빵이 어디에 있는지,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영혼의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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