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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눈물 (애 0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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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거룩하신 생애중에서 그의 일마다 눈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광야에서 산에서 뭇 영혼을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을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보실 때 마음에 통분하시고 비감하여 우셨습니다(요 11:35). 그의 가슴에 가득한 사랑은 한웅큼의 눈물로 화하여 방울방울 땅에 떨어졌습니다. 비평적 태도로 방관하던 가중한 유대 인까지라도 “저를 이같이 사랑하는 도다”하고 감격하였습니다. 그 누가 주의 뜨거운 사랑에 녹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아가페의 눈물은 마침내 죽은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죽은지 4일이나 된 시체를 살려 일으키셨습니다. 주께서 오늘날에도 영적 죽은자를 보시고 생명의 액체인 뜨거운 눈물을 흘리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자 에게 생명이신 예수께 접촉하여, 부활의 은혜에 목욕하라 하시며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거룩한 도성의 처참한 마지막 광경을 선전하고 위하여 통곡하시었습니다(눅 19:41).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까지 변함이 없는 주님께서는 현하죄악의 충만한 이 땅의 성을 향하여 역시 통곡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뜨거운 눈물이 있어 죄에서 멸망할 가련한 이 땅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합시다. 옛날 예레미야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불길이 뼈 속 깊이 침입하여 여호와의 일을 반포치 않을 수 없었으며, 또 그 이름을 가지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렘 2:9). 그래서 그의 눈에는 항상 동족애의 뜨거운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 눈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예수의 눈물을 경험한 것입니다. 토인비는 말하기를 “회심의 눈물이 없는 역사는 고통과 비극의 눈물이 대신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침략과 비애로 점철된 역사였지만 오늘이 시대에 경건한 삶의 눈물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가 의아스럽습니다. 본문에 예레미야 선지는 조국의 포로된 망국의 참상을 목격하고 렘애 2:11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고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진 것”같은 애통을 가지고 외쳤습니다. 이미 때는 늦었지마는 우리가 할 일은 “주를 향하여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는 길 뿐이라”고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로를 돌이키는 눈물이 무엇이지 몇 가지로 생각하겠습니까

1. 참회의 눈물(18-19절)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을 향하여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릴지어다‥‥‥ 네 마음을 주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눈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참회란 자기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애통스럽게 여기며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눅 18:13, 눅 15:20). 대개의 경우의 눈물은 자기의 슬픈 상태를 생각하여 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노를 돌이키는 눈물이란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과 공의로우심에 거스려 살아왔던 자기의 불의와 죄악의 생활을 원통히 여기며 흘리는 눈물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악에서 돌이켜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열심의 눈물이어야 합니다. 눅 15:20에 탕자의 회개가 바로 돌아서는 회개였으며 욘 3:7-8에 니느웨 백성들이 베옷입고 금식기도한 것은 애통의 회개였습니다. 욘 3:10에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 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범한 죄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 회개도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를 압니다. 시 6:6에 “내가 탄식하므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 32:3에 “내 뼈가 쇠하고 내 진액을 화하여 여름 가뭄 같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시 51:2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려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 주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려는 결의의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교만함과 혀의 악독을 회개하며 음란한 행위와 무자비한 행동을 눈물로 회개합니다. 악에서 떠나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 회개할 때 나와 내 가정에 임할 진노가 사라진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2. 의로운 눈물 렘애 2:11-12에 예레미야는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민족의 불행과 남의 영혼의 고통을 안고 창자가 끊어지듯 고통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환경이었고, 우리 민족의 노래였고, 우리 민족의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눈물로서는 하나님의 노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난의 원인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또는 외세의 침략 때문에 못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고난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요, 둘째는 시기와 분열입니다. 복음을 힘차게 전하여 예수의 영이 들어가면 우상은 물러갑니다. 이웃과 이웃끼리 일치의 마음을 갖도록 나를 낮추며 사지로 끌려가는 양처럼 희생의 마음으로 눈물을 홀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로운 눈물을 강물 같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민족의 고난의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괴로움과 자기희생의 길을 걸어가는 자의 땀과 눈물이 흘러야 하겠습니다. (1) 주님은 눈물을 홀리셨습니다. 마 23:37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눈물을 흘리도다”라고 했습니다. 히 5:7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라고 했습니다. (2) 모세는 그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죄”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천하에서 이 백성을 멸하시겠다고 하실 때 출 32:32에 “주여 이 백성의 죄를 사하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데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나도 같이 죽여주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3) 사도 바울은 롬 9:3에 “내 마음에 그치지 않은 고통이 있는 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내 형제 골육 친척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면 나도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 끊어지기를 원합니다.” 자기 민족을 안고 기도하는 바울의 의로운 눈물을 볼 수 있습니다. (4) 에스더는 동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4:16에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아하스에로 왕 앞에 나아갔으며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지운다는 왕의 엄명이 내린 것을 알고도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끊었습니다(단 6:10). (5) 인도의 간디 선생은 “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기 위하여 내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기를 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6) “닥터 지바고”를 써서 195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련의 시인 브리스 파스테르낙스는 노벨상을 받고 자유세계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권유를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철의 장막에서 자유가 죽도록 그립지만 나의 조국과 동족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이 생명들과 같아 고난 받다가 죽는 것이 자유보다 귀한 나의 신념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족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의로운 눈물이 강물 같이 흐르는 이 나라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잠 14:34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대하 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이 악할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오면 내 가죽을 벗겨 북은 만들고 축하 행렬의 앞장을 서리라”고 독립을 갈망하던 심훈의 단장의 한 눈물 야소위아사(野蘇爲我死) 주기철 목사의 신앙의 눈물을 우리도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6.25때 정부가 부산으로 옮기고 많은 종교지도자들도 부산으로 갔습니다. 이 대통령이 기독친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4개 교단 대표 목사님들이 대통령 특별실에서 기도했습니다. 비 오지 않게(미군 폭격 가능토록), 인민군이 넘어 오지 못하도록(낙동강 상공 천검은 천군으로 왔다) 눈물과 상처뿐인 이 민족 역사위에 다시는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립시다. 나를 희생하고 하늘의 뜻을 순종하는 의로운 눈물, 강물, 그리고 강물처럼 흘렀던 그 날의 피와 눈물! 오늘 우리 가슴 가슴마다 뜨겁게 흘러내리는 이 생명의 진액이 흐르는 곳마다 번영과 부흥의 꽃이 피고 관용과 사랑의 열매가 맺히고 통일의 가능력과 축복이 오게 합시다. 그래서 꿈에도 소원이던 통일을 이루어 정의롭고 밝고 희망찬 나라가 되게 합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가치와 보람을 창조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나라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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