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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근사한 생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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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세상 종말이 온다는 예언과 그 예언을 믿고 따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이비 종교에 나는 깊이 빠졌다. 이 기쁜 소식을 한 명에게라도 더 전해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당시 내게는 물질을 위해 돈벌이를 하는 사람도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도 모두 가엾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기에, 가정 불화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토록 설명해주고 진리를 깨우쳐주려 했건만,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는 더 이상 화합할 수 없을 만큼 점점 골이 깊어만 갔다.

그 무렵, 내게 하나뿐인 딸아이는 다섯살이었다. 늘 전도하러 다니는 터에 긴 머리를 땋아 간수해줄 시간도 부족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때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나 머리 자르는 대신에 , 내 생일에는 친구들 불러 근사한 생일잔치 해줘야해, 알았지?'

눈물방울 두 줄기가 아이의 볼을 타고 내렸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가 믿던 세상의 종말은 딸아이의 생일보다 앞서 있었다.

'네 생일은 아마도 천상낙원에서 맞을 거야, 아가야, 축하한다.'

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과 이혼을 했다. 가정도 자식도 그 무엇도 버리며 온전히 믿었던 세상 종말. 그 꿈같은 천상의 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황폐해졌다. 지금은 마음을 추슬러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사회인이 되었을 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 잘못으로 망가진 가정 때문에, 아이는 나보다도 더 많이 아팠으리라.

'엄마가 너 생일잔치 근사하게 열어줄게!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고...'

하지만 난 생일잔치는 고사하고, 생일날 딸아이에게 따뜻한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되어버렸다. 언젠가 딸이 엄마를 용서해준다면, 꼭 그 날이 온다면, 내 사랑하는 딸아이와 마주 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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