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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시야 왕의 마음의 혁명 (대하 3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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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975년으로부터 587년까지 약 388년간의 이스라엘 민족사를 읽어보면 문자 그대로 암흑의 역사이며 눈물의 역사입니다.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서로 반목질시하며 싸우는 동안에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의 포로가 되고 앗수르에 포로되기 전까지 250년간9회나 혁명이 일어나 정체가 바뀌였고 388년간 19인의 임금이 갈릴 때마다 정체의 변동이 오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남북조 이스라엘의 나라는 혁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히스기야 왕의 혁명정치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25세 청년으로 왕위에 올라 정치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깨쳐 버리고 전 국민으로 하여금 여호와만을 섬기도록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그의 아들 므낫세가 일어나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무너뜨린 바알 제단을 다시 쌓고 깨버린 아세라 목상을 다시 아로새겨 놓고 온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우상 종교를 믿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종교개혁 운동은 어두운 밤에 등불과 같이, 꺼져가는 등불의 기름과 같이 유대 민족의 생명의 빛을 보여주는 큰 공헌을 한 것입니다. 이 시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의 근본 의의가 무엇임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8세의 어린 몸으로 왕위에 올랐을 때 벌써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함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약해서 조금 잘못하면 한편으로 치우치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감정에 치우치고 어떤 사람은 지방색에 치우치고 해서 교회와 민족에 혼란을 가져오는 도화선이 되는 줄 압니다. 우리나라는 전란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여러 조건이 우리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예민해져서 정상적인 위치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비단 감정뿐만 아니라 경제 생활도 그렇고 모든 생활이 다 그러합니다. 이런 시대에 타고난 우리들의 사명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감정에 치우치고 물질에 치우치고 지방색에 치우쳐 무슨 회, 무슨 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편에 치우쳐서도 안되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교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요단강에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잃어버린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찾았습니다(대하 34:18-21) 요시야 임금은 예루살렘과 여러 지방에 편재해 있는 바알제단과 신당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할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다 무너져 가는 성전을 다시 수리하다가 일꾼들의 손에 의하여 성전 한 모퉁이에서 다 찢겨지고 더러워진 하나님의 율법책을 먼지 속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책은 제사장 사반에게 전하였고 사반은 다시 왕 앞에 들어가서 읽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그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는 소리를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은 장로들과 국민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율법을 엄수할 것을 서약하라고 외쳤습니다. 왜 하나님의 율법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천대를 받게 되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국보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관심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율법책이 읽어질 때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감화없이 듣고 넘기는데 요시야 왕만은 그 책을 읽는 소리를 들을 때 자기 옷을 찢고 "오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은 요시야 왕의 마음에 큰 혁명이 일어나서 그 심령이 새로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읽을 때 요시야 왕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산 음성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에 성공한 것은 외부적 의식을 뜯어 제도를 바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알 제단을 무너뜨린데에 있는 것도 아니라 먼저 저들의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율법을 찾고 그 율법 앞에 머리를 숙이고 옷을 찢고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3. 말씀의 권위 오늘 현대인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짓밟아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어느 교회에도 하나님 말씀이 자리를 잡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방종하는 자 많습니다. 성서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결국은 그 생활에는 비성서적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신앙이 타락한 까닭입니다. 옛날 구약시대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차합 왕이 불러서 우리 왕실 옆에 있는 포도원을 나에게 팔던지 더 좋은 밭과 교환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 거절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세벨이 백성들을 충동하여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경제적 타산적입장에서 볼 때 왕의 말을 듣는 것이 좋지마는 그가 죽음을 당하면서도 왕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열조의 산업을 팔든지 빌려 주든지 하는 것은 죄가 된다(민 36:7, 겔 46:18)는 말씀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나봇은 이해와 타산을 초월해서 성경말씀 한 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재산을 빼앗기고 생명까지 빼앗기면서도 굽히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교회사를 읽어보면 주후 2세기가 넘으면서부터 약 200년에 많은 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기 위하여 흘린 피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다나사우스, 폴리 갑, 이레니우스 같은 사람들입니다. 로마 카토릭 교회 시대 하나님 말씀에 바른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내었습니까 프랑스 한 지방에서는 3만명의 순교자를 냈다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 조상들이 하나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피 흘려서 권위를 세워 우리에게 전해준 이 말씀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성경이란 헬라 원어에 "캐논"이라 하는데 이는 "척도" "표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신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만 참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은 저들이 왜 소중히 보관해야 할 하나님의 율법책을 잃어버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저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또 배우고 해도 저들에게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고 특별한 무슨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조상들은 그 책을 통하여 많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하지만 저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책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이 점점 약해지고 마지막에는 그 책을 잊어버리게까지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율법 자체가 변해서 힘이 약해졌든지 능력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은 우리들이 그 말씀을 받을만한 심령이 죽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아무리 보고 읽어도 우리에게 아무 자극이 없고 반영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생명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하는 것을 알아보기 쉬운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가 성경말씀을 읽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아무런 감화를 얻지 못했다면 그 영 적 생명 이 죽은 까닭입니다. 지금 이 성경 말씀은 옛날 교부들이 생명을 버려가면서 지키던 그 성경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말씀에 대하여 이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욕망도 없고 이 말씀을 위하여 죽으려는 사람도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변했고 우리 양심이 변했고 생활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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