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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강력한 사역 (고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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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역자는 책임성이 강하고 또한 성질이 온순해야 합니다 (1) 바울의 나약성 특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유독히 두려워하고 약하며 심히 떨었던 것입니다(고전 2:3). 이것은 바울 같이 진실한 전도자들이 복음 전할 때에 가지는 공통된 심정입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전도자 자신의 어떤 것이 복음전하는데 지장을 초래하여 귀중한 구원의 사역이 지장을 받을까 두려워함에서입니다. 사실은 인간의 능변이나 지식이나 재주가 오히려 복음의 사역을 가로막고 복음을 받는 자들을 광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전도자의 심정 부흥회를 한번 여는대도 성도들이 회개하고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심이 못 되어 본 교회 담임목사나 강사가 다 같이 근심하며, 떨며 연약한 자리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일편단심 교인을 위하는 목회자와 강사의 심정인 것입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게 하고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사명감,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같은 사명감 없이 잔뜩 교만하여 성도의 형편을 돌 봄도 없이 마구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집회의 승패를 남에게 돌리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이런 자가 삯꾼이요 거짓된 자들입니다. (3) 은혜에 대한 일편단심 오늘날과 같이 거짓된 자들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보면 사도 바울의 이같은 충성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지 정말 의문입니다. 교인을 아끼며 그들의 심령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구원을 위주로 사명을 다한 바울의 마음, 이 얼마나 칭찬할만 합니까 이 얼마나 모범받을만한 태도입니까 이것은 장사꾼 심정으로 부흥회를 인도하거나 행사치레로 집회를 가지는 사이 비교역자들에 대한 강력한 자극제요 경고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육체대로 대하지 아니함 (1) 바울의 온유 고린도 사람들을 육체대로 대하는 것이었다면 바울도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11:18).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스스로 낮아져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자식들과 같이 그들을 권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절제하며 그들을 사랑함으로 포용하려고 하였으니 직접 면담할 때마다 그들을 부드럽게 대하기를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지혜입니다. 이같이 아니하고 목사가 주장하는 자세로(벧전 5:3) 도도하게 교인들 앞에 권위나 주장하고 대접이나 받고자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2) 귀한 것은 그들의 영혼 육체는 얼마 안되어 부패할 것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고 영원한 생명만이 귀중합니다. 사람을 볼 때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보지 않고 육체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영이 떠난 육체에게 그 무엇이 소중합니까 곧 부패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만 보고 판단하니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육의 생활을 부러워하게 되어 전도는 커녕 자기의 영혼 위주의 생활이 오히려 쑥스럽게 생각될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사람의 영혼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것이요 송장이 비단을 감고 최신형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것이 한결 불쌍하게 보일 것입니다. (3) 말씀을 위임받은 사역자 어떤 아비에게 9세와 25세 되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 아비가 9세 꼬마에게 “형더러 동대문에 심부름 갔다 오라고 해라” 하는 전갈을 주었다면 그는 형보다 신장으로나 지식면으로나 경험으로 보나 육체의 힘으로 보나 그 무엇으로 보아도 형만큼은 못되지만 아버지의 전갈을 받았다는 면에서 그의 형보다 더 당당하게 형에게 나아가 그 전갈을 전할 것입니다. 그는 약소하나 아버지와 동등된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말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 형이 핑계하거나 딴소리해도 형이 순종 안하면 아버지께 혼날 것과 집에 못 들어 올 것을 강력히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대면하거나 육체대로 생각할 때에 우리 전도자들은 매우 미약하고 부족하나, 그러나 그분(하나님)의 전갈(복음의 메시지)을 받았다는 면에서 담대하게 이를 편지로(문서전도) 혹은 직접 대면하여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는 빈부, 교육, 연령 차이가 관계 없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나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 권위있게 이를 전해야 하되 사랑을 곁들여야 합니다.

3. 성령으로 담대하고 온유해야 (1) 바울의 양면적 태도 육체대로 행하는 자, 즉 아직 거듭나지 않은 자와 직접 얼굴과 얼굴을 대할 때도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자제하고 포용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떠나 있을 때나 편지쓸 때 그는 정말 강력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과감하게 야단을 치고 경책하게 하였습니다(7:8). 이것이 곧 바울의 양면적 사역(Ministry)이었으니 우리 교역자들이 배울 태도입니다. 강단에 서기만 하면 호랑이가 되지만 심방 때면 토끼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모르고 교역자를 무서워해서는 안됩니다. (2) 성령으로 싸움 육체를 파하는 강력은 성령의 권능 뿐입니다. 육체를 세상 지식 등으로 설복시키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설교할 때 무슨 세속적 위인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문학적 줄거리로써 사람을 설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 보면 (고전 2:2-4).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 사람이 회개할 것이고 그들의 믿음이 또한 아름다운 인간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 인간의 이론, 반신적 지식, 교만을 파괴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권능뿐입니다. 딴 것으로 파하려는 것은 바위를 주먹으로 깨려고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특히 성령의 사역만이 모든 인간적 생각을 사로잡아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불순종의 마음을 복종시켜 구원에 참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끝까지 성령의 역사에 순종치 않는 자들도 있을 것이며, 이런 자들은 심판을 받아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6절).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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