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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능력 (고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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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받은 신령한 체험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질적인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없이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슨 병인가에 대해서 성서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그 병이 찌르는 육체의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흡사합니다. 주님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여 주옵소서”했습니다. 이 기도의 응답은 십자가의 고난을 없이한 것이 아니요, 고난의 잔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내 능력이 온전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내 능력은 무엇입니까 내 능력은 주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고 했습니다 약한 데라는 말은 인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여러 가지 가시와 같은 고통이나 질병이나 고독이나 슬픔이나 환란 같은 것들로 약해지고 자신의 약함을 깨달을 때 그리스도의 능력은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능력과 기술은 흙이 부드럽고 반죽이 잘 되어질 때 원하는 그릇을 만들어 구울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가 도구를 만들 때도 쇠가 뜨거워 연해질 때 쇠를 두들겨 마음대로 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심령이 상처를 입어 약해질 때 주의 능력이 우리 심령 위에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이 약해질 때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탕자가 타국에 가서 궁핍하게 되니 아버지와 집 생각이 났습니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깨달을 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참 믿음을 얻게 됩니다.

3. 가시나 고통 자체가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가시의 고통은 선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가시의 고통에서 낙심하고 자포자기 하는 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시밭 다음에는 초장이 있습니다. 검은 구름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구름이 있어야 찬란한 일곱색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약한 데를 통해서 주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체험합니다. “나는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는 고난받기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약할 때 곧 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자 프랜시스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부족한 것이 없었으나 그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 중병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밀톤은 실명한 후「실락원」이라는 시를 써서 명작을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만 그의 귀가 멀어 듣지 못하게 될 때 오히려 전보다 더 위대한 작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고독의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독의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에 요셉을 보십시오. 어린 나이에 부모의 슬하에서 살다가 형들의 미움으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옥에도 갇혔습니다. 얼마나 고독합니까 얼마나 슬픔니까 그러나 그런 까닭에 요셉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떤 시련에도 신앙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약한 데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 다. 모세의 생애를 여러분은 잘 압니다. 호화로운 궁중에서 왕자로서 살던 청년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히브리 민족임을 알았을 때 그는 왕의 보자를 다 버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의 고독의 생애를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부름을 받아서 마침내 위대한 히브리인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독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젊은 소년 시절 바벨론에 포고로 끌려갔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오히려 더 하나님을 의지 하고 그런 중에 더 큰 일을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단테는 프랜시스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고, 정치계에서도 크게 성공했었으나 정당의 패배로 망명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처없이 유리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독한 그 시절에 친국과 지옥의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고 오늘날의 걸작품인 신곡입니다. 고독한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존 번연은 신교의 지도자로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구교의 허락 없이 전도한다고 하여 구교의 교구에 의한 종칠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독한 12년의 옥중생활 속에서 신령한 은혜를 받아 그리스도와 만나는 가운데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처럼 약할 때, 고독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약한 가운데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미국은 흑백 인종 문제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흑인의 자유 문제 때문에 미국의 역사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흑인 노예해방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북 전쟁을 일으킨 배후에는 유명한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그 책 이름은 영어로 Uncle Tom's Cabin (톰 아저씨의 오막살이)입니다. 그 소설은 스토우라는 부인이 썼습니다. 그 부인의 아버지는 라이만 비쳐 목사요, 그의 오빠는 헨리워드 리쳐드 목사입니다. 그들은 미국의 유명한 목사들입니다. 그 부인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그분이 결혼해서 귀한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중병에 걸려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이 부인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언제나 딸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슬픔 속에 지내다가 하루는 부둣가에 가보니 노예들이 시장에서 갖은 학대와 매를 맞으면서 팔리는 슬픈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때 자기 마음이 그렇게 아픈 것을 생각하다가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이 슬픔을 당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노예 시장에서 팔리우는 노예들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흑인의 어머니는 자기 딸이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안 놓치려고 붙듭니다. 자식은 엄마 엄마하고 옵니다. 노예 상인은 사정없이 매질을 합니다. 이때 스토우 부인은 나는 딸이 죽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만 흑인 어머니는 아들 딸들이 팔려가 생이별하는데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 것을 느껴 이 사실을 소설에 그대로 묘사하였습니다. 그 책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이 글은 미국인들의 양심을 찌른 것입니다. 흑노는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약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이루어져 인류 해방과 노예 해방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주의 능력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주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십니까 진주패라는 조개가 있습니다. 그 조개가 깊은 바다 속으로 기어 다닐 때 모래알이 진주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 모래가 들어가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이 조개는 즙을 짜서 이 모래알을 감싸게 됩니다. 이렇게 몇년이 지나는 동안 오랜 세월을 계속해서 조개즙이 싸이고 감싸면 마지막에 둥근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진주는 조개의 고통 속에서 산출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고통의 가시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주 안에서 옳게 받으면 이것이야말로 진주와 같은 믿음, 진주와 같은 은혜, 진주와 같은 보배로운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약할 때 곧 강하니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약할 때에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우리 안에서 역사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주 안에서 믿고 주님을 의지하여 주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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