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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월절 양 (출 1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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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양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하여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속죄관 내지 구원관의 다양한 원리들을 발견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바로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준비한 양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우선 유월절 4일 전인 10일까지는 미리 재물로 준비 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중요한 제사에 씌워질 제물이라면 적어도 3-4일 전에는 준비가 완료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보임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더 신령한 의미는 어린 양의 원형으로서의 우리의 속죄주이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만세 전에 여호와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사실을 예표적으로 표시한 것이 됩니다. 유월절 양의 준비 과정에 따르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1) 한희중의 한 마리 유월절 양은 원칙상 한 가족을 단위로 하여 준비하게 마련이지만 만일 가족 수가 적어서 양 한 마리를 아침이 되기 전에 다 먹을 수가 없을 때는 이웃과 합하여 공동으로 한 마리를 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한 가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회중, 즉 전체 회중에 대한 책임인 것입니다. 비록 수천 수만의 분산된 집단이 있을 수도 있으며, 또한 수천 수만의 유월절 양이 준비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영적 이스라엘 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한 마리 양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교리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어린 양 어린 양이란 아직 생식을 한 일이 없을 뿐더러 또한 다른 목적에 이용된 바도 없는 순수한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어린 양의 모습을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그리스도를 표시함은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순수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흠없고 1년된 숫컷 양의 무흠성이 요구되었음은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을 표시하며 “1년된 숫컷”은 가장 발랄한 성장기에 있는 상태로써 이는 곧 33세의 청년예수의 희생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도살된 양 아빕절 14일까지 잘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습니다. 10일에 준비하여 14일까지 간직되었던 양이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에 의해서 도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중요한 진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변혁시킨 놀라운 사건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임에 대하여 하나의 예표적인 진리를 제시하고 있음이 바로 이 귀절입니다. 이미 준비 되었다가 도살된 양은 만세 전에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바 어린 양으로써의 그리스도를, 그의 계획에 의한 적절한 기회에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의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 양을 죽인 자는 이스라엘 회중들입니다. 이 회중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회중은 곧 신자 개개인의 입장을 표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자를 가룟 유다로만 생각하거나 또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로만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는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에는 언제나 양을 도살할 때 제주가 직접 잡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제사란 제사장의 소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실이 뜻하는 의미는 예수를 죽인 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자각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양을 잡는 시각은 저물 때입니다. 해가 지고 휘장이 뒤덮는 저녁입니다. 이는 곧 범죄의 시대, 어둠 권세가 판치는 밤의 시대요 암흑의 때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천지가 암흑에 휩싸인 사실도 이 어두움의 권세의 최후 발악의 상태를 보여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3. 유월절 양의 피뿌림 무엇보다도 유월절 양의 피가 그 집을 죽음과 재난에서 구원한 것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며 영생을 얻게 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마음의 문설주에 발라야 합니다. 특별히 유월절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피뿌림입니다. 그 피를 대야에 담아다가 우술초를 문지방과 좌우 설주에 발랐는데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피는 가장 귀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기독교 신앙에 가장 귀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짓밟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 양의 피뿌림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그 피는 국민의 표시입니다. 출애굽 전날 밤 라암셋의 거리를 거닐어 보면 한 가지 표시만으로 애굽 사람의 집과 이스라엘 사람의 집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설주에 피의 표시입니다. 애굽 사람의 집 문설주에는 피뿌림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속함을 받은 천국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세상 백성과의 구별은 바로 마음의 문설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뿌리워 있느냐 없느냐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과 지옥의 백성의 차이는 국적이나 언어, 학식이나 도덕, 피부 색깔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대속의 피를 흘리심을 마음 중심에 믿느냐 안 믿느냐를 보십니다. (2) 그 피는 구원의 표시입니다. 출애굽 전야에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으나,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집은 집집마다 장자가 죽었습니다. 애굽인들은 구원의 표시가 없음으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가리지 않고 나오면 우리들은 언약의 기업 중에 한 부분도 차지하지 못합니다. 여리고 성의 함락 과정에도 이 사실이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집에 재앙이 닥쳐왔으나 창문에 붉은 줄을 드리운 집, 기생 라합의 집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웃음과 몸을 팔고 술을 팔던 기생 라합의 집이었지만 그 약속의 붉은 줄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을 면할 자가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이 피는 잘 보이도록 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은 집 안에서 조용히 먹었지만 이 일을 비밀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피의 표시는 방안 으슥한 곳에 수건 따위로 가리울 수 있는 곳에 하지 않았습니다. 바깥문 안방과 좌우 설주에 발라서 누구든지 지나가는 사람이면 이 피뿌림을 다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다는 사실을 만민에게 알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교리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내 생활과 교회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뜻은 대속입니다. 이 피뿌림은 영원히 기억하고 지킬 규례입니다.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라”고 한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이 유월절 규례를 중요한 일로 지키는 것처럼 우리 기독교인은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십자가의 피를 믿고 순간 순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교리를 믿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도리를 믿으시고 증거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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