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생활의 축복과 비극 (잠 12:4-11)

첨부 1


1. 어진 여인과 욕된 여인 4절에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아내를 얻는 자는 왕위에라도 오른 듯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이유는 그런 아내가 자기에게는 면류관에 못지않게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어진 여인이란 잠 31:30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인은 또한 잠 30:12-27에 보면 노동미를 겸한 여인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경건의 미를 주장하나 노동의 미도 칭찬합니다. 어진 여인은 경건하고 분별력이 있으며 재간 많고 근면하여 가족을 위해 활동적이며 가사를 돌봅니다. 여자부로서 십자가를 지고 자기 의무를 다합니다. 그런 형모양처는 남편을 자기 머리로 여겨 존경합니다. 그는 남편의 면류관이 되고 남편의 명예와 존귀가 될 뿐 아니라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고 유지시켜 주기까지 합니다. 그 여인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신실하며 자기가 본을 보임으로 자녀와 종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욕을 끼치는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그는 남편과다투기를 잘하는 자입니다. 잠 21:9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처는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같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아내는 남편을 멸시하는 여인입니다.

2. 의인의 생각과 악인의 생각 5-7절에 “의인의 생각은 공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시킵니다. (1) 마음 속 생각에서부터 서로 다릅니다. 의인은 그 생각에서부터 공의를 찾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 생각에서부터 거짓을 꾸밉니다. 격언에 “까마귀가 내 머리 위로 지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머리 위에 와 앉는 것을 나는 용납하지 않은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으로부터 악과 더불어 싸우기만 하면 우리는 궤휼을 도모하는 악인은 아닌 것입니다. (2) 악인은 말로서 남을 해롭게 하나 의인은 남을 구원해줍니다. 악인의 말은 악담과 훼방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남을 죽이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사람을 아끼고 돕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남을 도와주려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3) 악인은 마침내 멸망하나 의인은 구원을 받습니다. 의인도 혹시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받을 때가 있으나 그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악인의 기쁨은 잠깐입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높음을 받을 수 있으나 얼마 안 있어 엎드려져 소멸되고 맙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겉은 아름다우나 그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였고 그 심판으로 인해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번영은 그 기초가 튼튼하여 오래가고 정직한 자의 자손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3. 칭찬과 멸시 8절에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패려한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란 것은 사람이 참 하나님을 믿어 진리를 알 뿐만 아니라 실행하는 힘을 얻습니다. 사람이 말만하고 행함이 없다면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이 핍박받는 경우기 있으나 사람들의 양심은 언제나 의인을 칭찬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후 5;11에 첫째 하나님 앞에 알려지기를 원했고 그 다음으로는 사람들의 양심에 알려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명성이란 미덕과 진실된 경건과 사려 깊은 처세에 의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재물이나 지위나 재주보다 간교함을 따라 내리는 칭찬이 아니라 그의 지혜, 정직함을 따라 주는 칭찬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패려한 자는 양심 세계에서는 멸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부자들이 입으로는 칭찬을 하여도 그 양심으로는 멸시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칭찬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4. 종을 부리는 자 9절에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체 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실질주의와 허영주의를 대조시킵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처지를 가리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은 세상의 헛된 영광은 누리지 못해도 생활면에 있어서 일군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알차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의인의 자비와 악인의 잔인함 10절에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육축의 생명도 돌아볼 만큼 긍휼이 넘칩니다. 그리고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는 자가 사람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그와 반변에 악인에게는 긍휼이 없습니다. 악인은 악인의 행동 그 자체로 일종의 잔인한 행동이 숨어 있습니다. 즉 악인의 긍휼조차도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6. 경각하는 자와 방탕한 자 11절에 “자기의 토지를 경악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근면의 덕을 칭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 3:19에 “이마에 땀이 나와야 살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조만간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와 반면에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빈곤하여집니다. 여기 방탕한 자란 말은 나태한 사람들을 가르키는데 그런 사람들은 게으른 생활을 하는 자는 마침내 가난하여 집니다. 그런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지혜안에 거하여 진리를 사주하며 참된 사랑 속에 성숙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