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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모험적 신앙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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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는 “피난민의 시대”라고 합니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최대 규모의 난민 이동은 일제시대에 만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많은 민족이 이동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이동과, 수년 전 동서 파키스탄 분쟁으로 수백 만 명이 망명하여 오늘의 방글라데쉬 국이 된 사실과 아프리카에서 대기근으로 인하여 수 백 만 명이 먹을 것을 찾아서 이주했던 사실이며, 근래에 와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로서 한국 교포가 미국에 300만 명이 사는 것들이 커다란 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그 곳은 안전하고 안락한 장소였지만 태양신 말룩을 섬기는 일로 해서 많은 우상들이 들끊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 숭배자였다고 합니다. 사막의 종교는 여호와의 종교며, 가나안 신은 농사와 관계된 우상종교였습니다. 족장들은 원래 사막의 유목민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의 계시는 어떤 성도에 고착하지 않고 개인에게 고착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1. 아브라함을 부르심

신앙생활에는 언제나 양면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행하시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행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도전하실 때 인간이 거기에 대하여 응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편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시는 편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색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시여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전연 하나님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시여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 철학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의 계시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입니다. 요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노라”고 했습니다. 롬 9:16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소위 장로교에서 말하는 예정론입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 신자가 아니고 그 이전에도 신자가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담”, “아벨”, “노아”, “에녹”등은 아브라함 이전의 신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구원 역사의 기초를 놓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 민족을 형성하고, 유대 민족을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개인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보다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는 더 강하고 믿을만한 것이었습니다.

2. 아브라함의 모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방향 제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모험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살아갈 길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75세에 고향을 떠나기 위해서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결단은 큰 희생을 의미한다고도 하겠습니다. 사막생활에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생활의 안정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것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의 출국은 육체적인 분리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소유에서부터 영혼의 내적 분리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개척자였습니다. 개척라는 광야 가운데로 앞서가며 뒤따라 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개척자는 야심과 내적 불안정 또한 새 것을 발견하려는 목마름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인류의 운명에 대한 창조적인 힘입니다. 개척자는 신념에서 사는 고독한 영웅들입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부터, 청교도들의 조상들은 뉴잉글랜드로부터 미지의 땅 아메리카를 향하여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은 여러 가지 능력들을 가지고도 그것을 활용하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최대한이 아닌 최소에서 안주하려 하며 최적 조건 이하에서 행동한다”고 월리암 제임스는 말하였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들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현실보다 하나님을 선택하여 미지의 땅을 향해 결단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깅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은 새 희망, 새목적, 새 이상으로 인류를 위한 성을 지었습니다. 인생의 성공에는 네 가지가 필요한데 ① 모험심 ② 결단력 ③ 지구력 ④용기입니다. 인생에게는 모험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모험해야 할 자리에서 행동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드는 것이나, 여호수아가 태양을 향해 머무르라고 외치는 것이나, 베드로가 노한 풍랑 속에 뛰어 내리는 것이나, 38선을 넘어 피난온 결단이나, 콜럼버스가 2개월간의 대서양을 횡단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일이며, 청교도들이 메이훌라워 배를 타고 미국 신개척지를 찾아 이민온 일이며, 우주인 암스트롱 외 2명이 목숨을 걸고 최초로 로켓트를 타고 달나라에 여행을 간 일은 다 모험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세계는 개척되었고 또 역사는 전진해 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 필요한 모험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갈대아 우르는 차차 멀어지고 가나안이 점점 가까와지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려면 이 죄악 세상과도 멀어지고 하나님 나라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아비나 친척이나 전토나 세상 것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죄악에 대한 정을 끊어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3.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신앙의 모험을 요구하시는 동시에 꿈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꿈이 없으면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가 꿈이 없다면 모험을 했겠습니까 우주인이 꿈이 없다면 모험하겠습니까 꿈이 있기에 성취하려고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1)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2) 큰 민족을 이루리라. (3) 세계 만민이 너로 인하여 축복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때 그는 이 모든축복을 다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신앙의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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