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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좋으신 하나님 (시 7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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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편은 아삽의 시 라고 합니다. 시편은 150편으로 편집된 시인데 5권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그러므로 시 73편은 세째 권을 장식하는 유명한 시입니다. 아삽은 고라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성전의 성가대를 인도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히브리인들이 아니고 에돔 족속으로 히브리족에 귀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삽의 시” 혹은 “고라 자손의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들은 순수 히브리 민족이 아닌, 그러나 히브리 민족으로 귀화하여 종교적으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경건한 신앙가들의 신앙 고백이기에 우리는 더욱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시 73편은 우리 신앙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간 신앙인의 고백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는 마치 구약 욥기에 표현된 인생 문제와도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해답을 찾기 힘든 문제를 가지고, 신앙으로 대결하여 해답을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1. 하나님의 절대 선하심을 믿는 신앙의 간증 1-3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인은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 형통하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얼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도다”라고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악인은 형통하고 왜 의인은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악을 행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하고 의로운 사람은 복을 받아 모든 일에 형통해야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실 사회는 이와 반대의 현상을 도처에서 나타내고 있는가 이 문제는 이 시인만의 고민이 아니며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의 오랜 고민이였습니다. 예레미야도(렘 12:1), 하박국도(1:2),번민한 문제이며 욥도 이 일반적인 고민을 해석해 보려고 시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73편 시인은 진지하게 이 인간 모순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2절에 해결 못하여 “미끄러져 나가서 스스로 넘어질뻔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혼자서 깨달아보려고 심히 고생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이 시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고민한 문제를 용감히 싸워서 이긴 승리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만 충성스런 신앙 생활을 하려는 사람이 인간 사회의 실질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모순된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찾고 의지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용기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교훈의 요점은 인간의 모순은 하나님의 관심 밖이 아니고,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실제하시고 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하나님이 되고 오늘 현실에서 고민하는 나의 자랑과 영광이 되신 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촛점은 인간 모순의 해결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윤리적인 문제이고,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신앙적인 문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시며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확실하다면 여러 가지 모순된 일들이 있다 하여도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원칙은 흔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모든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믿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시험과 고초를 당할 때마다 이 신앙을 가지고 버텨 나갔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너희가 모르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주장하신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은 더 분명히 발견됩니다. 사도 바울은 롬 11:33-34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그렇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신앙은 사탄에 대해 우리를 더욱 강하 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과 법령을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섭리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을 행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마음이 정결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십니다. 이 시인은 정말 지혜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몸부림치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6절에 보니“내가 어찌하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가 심히 곤란하더니”, 17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의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그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시고 그로 하여금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인은 악인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인의 형통함이 절정에 달했을지라도 그들은 멸망하기 위해 무르익은 것에 불과함으로 그들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따라 하나님의 성소에 나와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주님께 기도함으로 마음에 평화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의 번영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그러나 악인의 번영은 단지 풀의 무성함 같고, 들풀 같이 쇠잔할 때가 옵니다. 소나무가 곁에서 자라는 호박 넝쿨을 보고 “너는 어쩌면 그렇게 빨리 자라니 그러다가 온 세상을 덮겠구나” 하면서 부러워합니까 아닙니다. “두고 봐라 네가 아무리 큰 소리치며 세상을 다 덮을 듯이 야단하지만 두고 봐라”고 합니다. 왜요 오래된 소나무는 벌써 여러해를 지나는 동안에 호박 넝쿨이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다가 겨울이 되어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면 흔적도 없이 말라 버리고 만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번영이 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생활과 하나님께 만족을 두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라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불평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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