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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언하는 장로 (민 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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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역의 진정한 비결은 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천재적인 자질이나 인간의 통찰력이나 인간의 정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모세 당시에도 사실이고 지금도 역시 사실입니다. 슥 4:6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이 사실을 착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붙잡아 주며 그 사역에 계속적인 생기를 공급할 것입니다. 성령께 항상 의탁하는 데서 나오는 사역은 결코 메마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어떻든 인간의 독서가 아무리 철저하든, 인간의 지식의 저장이 얼마나 광대하든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성령께서 그 사람의 사역의 샘과 능력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조만간 그런 사역은 생기와 효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복음전파자나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자나 여하간 봉사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에 계속적으로 그리고 오직 그것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성령께서는 영혼의 필요를 다 아시며, 그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믿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위임해야 합니다. 반은 자아에 의지하고 반은 성령께 의지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자기 신뢰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곧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성령의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자아에 속한 모든 것의 밑바닥을 다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 연구에 거룩한 근면과 열성을 보이지 말라든가 또는 훈련과 시련과 투쟁과 영혼의 각종 난점에 대해서도 전연 근면과 열성을 보이지 말라든가 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은 자기를 비우고 성령이 강력한 능력에 보다 절대적으로 의지하면 할수록 성경책과 영혼 등 양자의 연구에 보다 더 부지런하고 보다 열심으로 하게 될 것으로 느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께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것을 기도하는 가운데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까지 소홀히 해도 되는 핑계로 삼는 다는 것은 치명적인 과오입니다. 딤전 4:15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 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지금도 살아있고 결포 패함이 없는 원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생기와 충만으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를 가져오게 하고 그것들을 하늘의 권능으로 영혼의 현재적 필요에 적용시키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십니다. 복음전도자의 위대한 주제는 그리스도시며, 그 주제를 요리하는 능력은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계속 새롭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상태나 운명은 지금도 신중히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설교자가 하나이든 칠십인이든 그것이 상관이 없으며 한 사람이 한 장소에서 50년을 설교하든 여러 곳을 설교하러 다니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며 그의 뜻대로 선포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70인을 통해서나 한 사람을 통해서나 꼭 같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70인이 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아닙니다. 24절에 “모세가 나가서‥‥‥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모세가 백성에게 고기에 관하여 말했음을 분명하게 전하여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백성에게 고했다고 간략하게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장로들이 회막으로 소집된 것은 그들이 지도자와 유사들로 임명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본문에서 그들을 둘러 세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회막에 둘러선 것은 하나님 앞에 선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전심하도록 결단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필요한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사명감을 갖도록 하실 목적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덕망과 경험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들을 선택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받은 소명이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그들을 새롭게 준비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언을 한 것” 은 그들이 영의 은사를 받았다는 외적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는 다른 목적도 있습니다. 신앙을 갖지 아니한 많은 문필가들이 시인을 예언자라고 부르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 자체가 영감의 맛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영감을 주었던 그 특이한 재능은 예언이라고 호칭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언의 신은 이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차 증거를 보인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후에 모세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 예언의 은사가 일시적으로 임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음에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26절에 “그 녹명된 자 중‥‥‥두 사람이 전에 머물고‥‥‥‥” 라고 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이 선택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이유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음으로 그들은 사실상 초대를 받지 못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이들의 형편을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뜻에 의하여 별도로 취급되었다는 사실 또한 눈 여겨 보아야겠습니다. 일반 백성이 누구나 이 증거를 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음으로 이 두 사람이 그들 중 눈에 띄는 증거를 보임으로써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알려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문이 더욱 널리 퍼지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전 12:4-5에 “은사는 여러가지”나 이 은사들이 유래되는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직임은 여러 가지”나 섬김을 받으실 주님은 한 분이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성경의 다른 데서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사들을 어떤 개인이 혼자서 모두 갖도록 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각 사랑에게 나누어 주신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동요는 다소 심란해졌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금 온전한 평정을 회복하고 즉시 자기의 직무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70인 장로에게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갑자기 능력과 지혜를 받아 비상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행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70인 중 두 사람에 관한 특정사실이 있습니다. 곧 엘닷과 메닷인데 아마 형제였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자기 정치 보좌관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회막에 나아가지는 아니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지명되었지만 부름 받지는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이유는 소환령이 내렸을 때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치리자의 나아가는 것을 사양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진내에 있는 그들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천막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서 예언했습니다. 즉 그들은 거기에서 기도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은사를 받아서 자기들의 개인 천막 내에서 그 은사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회막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과 같이 자기 마음대로 분다(요 3:8)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주의 영을 피하겠습니까 이 두 장로가 결석했다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장로들이 받은 영은 과연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 그리고 모세가 장로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임이 밝혀졌던 것입니다. 본인들은 겸손 때문에 직무를 수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권으로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들은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차지한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들은 존귀하게 되며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장 적은 자가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자입니다. 이 정보가 모세에게 전해졌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 이다 개인 천막에서 집회가 있었고 엘닷과 메닷이 설교를 하여 모세의 감독과 관할을 벗어났고 다른 장로들의 회합에 이탈했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중지시키라고 했습니다. 28절에 “내 주 모세여 구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70인의 장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자기가 차지한 직위의 명예를 매우 존중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예언자가 예언을 하지 않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과 함께 하기를 바랬습니다. 모세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은사, 은혜, 능력에 대해서 시기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29절). 모세는 이 두 사람을 침묵시키고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소멸케 하기는 커녕 오히려 “여호와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들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은 모세의 증언을 명심합시다.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짐입니다. 그 통치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자에게 염려와 번민의 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의식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마지막 심 판 날이 오면 그것은 더 큰 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은 모세의 행위를 본받읍시다. 남의 충고나 협조를 경멸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잘못을 시정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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