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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가시 (고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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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 바울에게 찌르는 가시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가시는 무엇입니까 바울의 가시에 대하여 세 가지 해석이 있는 바 그 첫째는 심리상의 고민이라 운운하니 음욕, 전 죄의 회한 등 고민을 일으키는 악마의 충동이라 합니다. 둘째는 외래의 고통이니 적의 공격, 또는 핍박이라 합니다. 세째는 육체상 병고이니 우울증, 간질병, 두통증, 히스테리, 안질, 기타 어떤 질병이라는 말이 더 많습니다. 그럴른지 모르거니와 마음의 고통과 외환과 병고 세가지가 다 찌르는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부르짖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짖는 것은 분명히 마음을 찌르는 가시였습니다. 베드로는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전 죄를 회상하고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이 애통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심리상 가시가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외래의 가시입니다. 우리에게도 외래의 가시가 있으니 가정에서는 아내의 가시, 자식의 가시가 있고, 교회생활에서는 집사의 가시, 장로의 가시와 이단의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사회생활에서도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노아에게는 함이란 가시가 있었고, 바울 선생에게는 간질, 안질병 같은 가시가 있었고, 그 밖에도 무슨 경악이 있었던 것 같으니 병은 참 가시와 같이 괴로운 것입니다. 사람마다 병의 가시에 찔리워 괴로워하고 낙망하기 쉽습니다. 개인에 대한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도 가시가 있나니 민 33:55에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 가시의 3대 이유 개인의 가시나 전체의 가시나 다 어려운 것입니다. 심리상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요, 육체상 질고도 참기 어려운 가시요, 외래의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종에게 가시를 주셨습니까 바울은 이 가시가 떠나기를 세 차례나 간구했습니다. 가시는 떠나지 아니하고 대신 가시를 주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 첫째 이유는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의 받은 복음과 계시도 기묘하였거니와 삼층천의 영계는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기이였습니다. 생각컨대 로고스의 사도 요한 이상의 경험이라고 교만하기 쉬운 고로 찌르는 가시를 주셨습니다. 도처에 나타난 그 권능과 세계 전도의 업적과 독립 전도의 권위는 수사도 베드로 이상이라 자처할 수도 없지 아니하지만 가시가 찌를 때마다 바울은 스스로 낮아졌던 것입니다. 정통을 자랑하는 교사에게도 때로는 가시가 필요하고, 성공을 자랑하는 전도자에게도 때로는 가시가 필요합니다. 저와 같은 소자도 한 필의 붓으로 10년 동안 전도하고 전도해도 가시가 있고, 또 가시가 필요합니다. 교만은 사람의 처음 죄요,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바입니다. 성공자가 다 교만으로 망하게 되니 여러분은 교만을 가지시겠습니까, 가시를 가지시겠습니까 바울의 바른 신앙도 교만을 두려워하여 가시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2) 둘째 이유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함이니 9절에서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11절에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이 가시에 찔려 약하여진 연후에 하나님의 권능이 완전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만일 바울 자신이 강한 때에 업적이 나타나면 이를 자기의 힘으로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요, 따라서 그 권능도 중단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신앙 인격을 연마하였으며, 어떻게 민족을 구원하는 위업을 준행하였을까요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온전히 받은 자였지만 열 형제 중 가시에 찔리고 찔린 끝에 애굽인의 종으로 팔리었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그 집 여인의 가시에 찔리었고 마침내 옥에 갇히어 옥고의 가시에도 찔렸던 것입니다. 요셉은 가시 가운데서 인격이 완성되고 만민 구제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위인 모세는 어떠합니까 몸이 공주의 아들이 되었으며, 위는 바로 일인 지하요 귀는 만인 지상이며 머리에는 지식이 찼고 전신에는 용력이 넘쳤으며 가슴에는 세 척 장검과 수중에는 애굽 군마의 대권을 잡았습니다. 모세는 이런 완력으로써 능히 이스라엘을 구원할 줄로 생각하여 철권으로 살인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형제의 가시에 찔려 미디안에 망명하였고 40년간 가시 집살이에 찔릴대로 찔렸습니다. 가시 가운데서 노쇠하여 약하여진 저는 “내가 누구관대”(출 3:11)하기까지 겸손하여졌습니다. 자력도 의지할 수 없이 약하여진 모세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바울도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이 약한데서 완성하는 비밀을 체험하여 “내가 약할 때에 강하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먼저 가시로써 인격을 연단하고 천장의 대권능이 먼저 가시로써 사람의 힘을 부인케 하는 것입니다. (3) 세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5)를 나타내시고자 하여 가시를 주셨습니다. 아가서 2:2에 보면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하였으니 하나님의 신부는 가시 가운데 백합화입니다. 백합화가 그 얼마나 찔리고, 그 얼마나 괴롭고, 그 얼마나 조심스럽겠습니까 동풍이 불면 서편 가시에 찔리고, 서풍이 불면 동편 가시에 찔리니 바람이 불 때마다 가시 가운데 백합화는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립니다. 그러나 백합화는 가시에 찔릴 때마다 향기를 내고 그 향기는 바람에 날려 멀리멀리 퍼지게 됩니다. “바람아 불어 백합화의 향기를 날릴지어다. 가시 가운데 크리스챤아! 부는 바랍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거라.”

2. 가시를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교만 방지의 가시, 권능을 나타내는 가시, 향기를 내는 가시를 내 어찌 받지 않으리요. 그러나 이 가시의 아픔, 내 가시의 쓰림을 어찌 견디리요. 바울도 가시가 떠나기를 세 차례나 간구하였거든 내 어찌 이 가시를 이기리요. 그러나 10절에서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시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쓰신 가시관을 보십시오. 가시에 찔리사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 날 위하여 그 아프심도 상관치 않으셨습니다. 만인이 조소하는 가시관을 주님은 날 위하여 그 욕되심도 상관치 아니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가시관에 비하면 바울의 가시, 나의 가시는 그 무엇이겠습니까 내 주께서 쓰신 가시관을 우리는 안 쓰겠습니까 가시관은 각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내 몫에 주어진 가시관을 늘 쓰고 갑시다. 그 면류관을 쓰고서 저 천당가시길 바랍니다. 10절에 “곤란을 기뻐하노니” 하였듯이 기쁨으로 가시를 감당할 것입니다. 불교는 고해의 고통을 잊어버리고자 하여 정숙에 임하나니 감무의 침살이요, 마취제요, 고의적인 망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정숙이나 망각 등의 고(故)의 종교가 아니라 중생의 종교입니다. 완전한 생명으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정숙의 술도 마시지 아니하고 십자가의 어려움도 망각하려 하지 아니하고 깨어서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바울에게서 가시가 떠나게 하지 아니하고 바울로 하여금 그 가시를 이기게 하며, 그 가시로써 은혜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교와 같이 고를 망각하는 술을 마실 것이 아니라 깨어서 고를 극복할 것이요, 가시가 떠나기를 꾀할 것이 아니라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가시 가운데서도 신앙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권능인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것이요, 소망의 기쁨으로 가시의 길을 전진하여 천성에까지 돌진할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서 마음의 가시는 변하여 영원한 기쁨이 되고 육체의 가시는 변하여 강건한 영의 몸으로 될 것이요, 외부의 가시는 천국의 면류관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며 감사하는 생활로 환란과 고통 중에도 성도의 신앙을 지키고 주님 오시는 그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 참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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