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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내의 인생 (약 0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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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말관과 인내 7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했고 9절에는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기독교의 말제관인 바 우리의 최대의 신앙이요 최후의 소망입니다.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에게 인내가 필요한 것을 가리킨 것이니 억울해도 참고 괴로워도 참고 주님이 더디 와도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계시록에 가르치신 말세관을 보든지 주님께서 가르치신 말세훈을 보든지 예수의 재림이 임박 시 칠년 대 환란,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 등이 있은 이후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니 우리 말세 당한 신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롬 8:25에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낙심말찌니 주님 재림을 고대하는 신자는 천년 이천년을 두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중에 “길이 참아라”라는 말이 네 차례나 기록되어 있고 “인내”라는 말이 두 차례나 기록되어 있을 만큼 말세 신자들에게는 인내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 인내를 농부의 인내에 비하고 선지자의 인내에 비하고 욥의 인내에 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로 아브라함과 모세, 그 후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나 사도를 위시해서 지난 때의 성도들은 안락한 생활을 한 자가 없고 고해의 세상에서 박해와 환난, 질고와 빈한과 싸우는 생활을 했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성경의 진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통을 인내로써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농부의 인내를 볼지니라 7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 때의 신자의 인내를 농부의 인내에 비한 것이니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와 합하여 생각하면 농부의 인내는 특히 말세의 전도의 인내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서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른 비는 10월 하순과 11월 상순에 오는 비입니다. 대개 씨를 뿌린 직후에 오는 비입니다. 이 비가 안 오면 뿌려진 씨가 전연 싹트지 않습니다. 늦은 비는 5월의 비입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때에 필요한 단비입니다. 농부는 농사짓는데 있어서 조금도 덤비지 않고 오래 참아 절기의 시종을 기다려 참아 가는 것입니다. 5월의 비가 오지 아니하면 곡식은 충분히 성숙치 못합니다. 이처럼 신자들도 주님이 오시기까지 오고 또 오는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하여 나갈 때 그들의 신앙에 유효한 단비와 같습니다. 전도는 언제나 농사짓는 일과 같습니다. 말세에는 인심이 혼란할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와 거짓 스승과 이단과 악의 사상이 성하여 우리 믿는 성도도 신앙의 유지가 어려운 이때 구도자를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써 전도해야 할 것이요 주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여야 할 것이니 여기에 말세 신자들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농부는 흉년이니 풍년을 가늠하지 않고 씨를 뿌리며 비 오거나 가물어도 김매고 가꿉니다. 씨를 뿌린 뒤에나 결실기에 가물게 되면 농부의 초조한 마음은 비길데 없습니다. 단비를 기다리며 땀 흘리는 농부는 인내로 하루하루 지내며 씨 뿌릴 때부터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까지 인내로 일관합니다. 땅에서 나는 열매를 얻으려는 농부도 이렇게 참고 기다리거든 하물며 하늘 곡간에 알곡을 채우려는 천국 농부에게야 인내가 더욱 귀하지 않겠습니까

3. 선지자의 인내를 본받으라 10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위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는 중에도 참은 것처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복음을 전하는 신자들도 고난에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고난 받는 신자들을 위하여 위로하고 격려하시기 위해 고난 받은 선지자들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곧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이라면 하나님과 친밀하고 권능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도리어 고난 받은 사실은 후대의 신자들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말세를 예언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혹독한 형벌을 받았고 예수의 모형인 요셉은 형제에게 팔려 애굽 옥중에 갇히우는 시련을 당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는 민중의 돌에 맞아 죽었으며 예수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의 박해를 당하여 톱으로 켜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증거 한 세례 요한은 살로매의 춤 값으로 헤롯 아그립바의 칼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칼로 죽임과 돌에 맞아 죽임과 톱으로 켜서 죽임은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만 이 예언자들은 참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최후일각까지 외친 것입니다. 야고보 자신도 주님의 재림을 길이 참았습니다. 그는 곤봉으로 맞아 죽기까지 참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을 참아서 십자가에 거꾸로 죽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참았습니다. 선지자들, 순교자들은 주님 재림의 그 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첫 부활에 참예하고 천국으로 영광 중에 올라가기를 참고 그 때를 긴다립니다.

4. 욥의 인내를 보라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의 신자는 욥과 같이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재산을 다 잃고 자녀를 다 잃고 몸은 악창으로 썩어 들어가고 처에게 버림 당하고 친구들이 조롱하는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당했으나 욥은 참고 참았습니다. 이런 환난 중에서도 욥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함으로 이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는 큰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그 후에 욥은 갑절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 삶에 실패할 때에 참는 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지만 하늘의 기업을 바라보고 참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욥처럼 육신의 고통을 당해보지 못하고는 장담할 일은 못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성회를 생각하고 부활 영광의 새 몸 입은 것을 바라보고 세상의 고난을 참고 이겨야할 것입니다. 가족이 핍박할 때나 타인이 대적할 때나 친구가 공박할 때에 사람의 핍박이 괴로우나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참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마 24:13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생을 주님 기다리다가도 마지막 하루를 참지 못하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치 못하여 버림당하고 말 것입니다. 끝까지 믿고 최후일각까지 참고 참아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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