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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의 인격 (골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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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바울은 누가를 가리켜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별명입니다, “재기하는 모세”, “회개하는 베드로”, “기도하는 엘리에셀” 등 모두 아름답고 거룩한 별명들입니다. 누가는 다재다능한 자입니다. 그는 의사이며 문학가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대여행가며 전도자입니다. 신약성서에서 누가복음, 사도행전은 역사적으로 보나 예수님의 전기로 보나 신학으로 보나 없어서는 안 될 매우 귀한 보배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1, 2, 3차전도 여행에, 또 로마로 가는 모든 행로에 누가가 함께 동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로마에까지 복음이 미치는 기독교의 기원을 밝힌 대역사가 이기도 합니다. 오늘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라는 별명에서 그의 인격 속에서 우리는 신앙생물 몇 가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지덕을 겸한 누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누가는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제단도 오늘날은 누가와 같은 문장으로 전도사역에 봉사할 수 있는 지적인 교역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영국 교회는 믿음이란 세상 학문을 무시하고 무식하고 과학도 모르는 사람이 믿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함흥의 어떤 교회의 장로 한 분은 믿음이 독실하여 교회를 창립하고 개척 교회를 일곱이나 세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일류 대학의 장학생으로 합격되었으나 그 장로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성경을 읽고 성경의 말씀 속에서 살아야지 세상 학문, 초등 학문을 배워 무엇 하느냐고 하여 그 아들을 평생 지게꾼, 막노동을 하면서 살게 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세상을 모르고 참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한국의 초대교회 신자들이 과학 지식에 대하여 얼마나 소홀히 하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울 기회에 배우되 특히 과학지식이 필요합니다. 누가와 같은 역사가, 문학가, 의사, 과학자, 여행자, 전도자가 한국 교회에서는 매우 필요합니다. 누가는 또한 그의 지식에 덕을 더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식이 풍성하나교만하지 아니하고 의술로서 만인을 봉사하고 겸손하였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경의 사분의 일에 해당되는 두꺼운 분량으로 초대교회 역사를 밝혀주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저자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충실한 조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서신에는 그의 이름이 단 세 번 나타날 뿐입니다(골 4:4, 몬 1:24, 딤후 4:11). 누가의 저작의 특성은 주님의 사도들의 행적과 말씀을 충실히 전할뿐 저자의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연 누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인격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겸손의 인격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첫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가까이 가시고 높이십니다. 누가의 겸손은 결국 그로 하여금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자가 있으며 실천보다 말을 앞세우는 자가 있습니다. 말을 앞세우는 자는 흔히 그 말이 허실로 돌아가는 수가 많고 따라서 사람에게 신임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실천을 앞세우는 자는 그 말이 무게가 있고 남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습니다. “말만 하고 행함이 없는 사람은 잡초만 우거지고 곡초도 없는 밭과 같다”는 격언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없이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하겠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은 영원히 침묵한다”라는 회의적인 말을 했습니다만 오히려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의 위대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누가는 이렇듯 지식에 덕을, 그 덕에 말없이 실천함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2. 의리를 지키며 고난을 분담한 누가 누가는 지덕을 겸하고 겸손과 사랑의 사람인 동시에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목회서신의 일부인 딤후 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한 것을 보면 여러 동지가 바울을 떠났으나 누가 홀로 수난당한 사도의 고난을 최후까지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 전성시대에는 동지도 많았고 따르는 제자도 많았으나 죄수의 몸으로 옥중에서 석방의 가망이 보이지 않으니 모두 그 곁을 떠나버린 것이 세상의 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만은 선생의 최후를 지켜보는 의리를 다하여 자신의 생명의 위험과 핍박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인정 많은 사람은 많으나 의리를 지키는 자는 새벽별처럼 귀합니다. 누가는 시종일관한 의리의 사람입니다. 바울과 동역한 그의 태도가 그러하였고 자신의 최후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와 같이 누가는 마지막까지 충성하였고 혼연히 고난을 분담한 봉사자였습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수고를 자담하고, 어려운 일을 혼연히 맡은 사람, 끝까지 변치 않고 봉사하는 사람이 누가인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습을 달성하려면, 사업가가 기업을 성공시키려면, 가정주부가 현모양처가 되려면, 목사가 목회에 성공하려면, 정치가·교육가·농부·상인 등 인간과 각계각층에서 남보다 더 성공하려면 남보다 더 큰 고난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처칠은 “내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다. 피를 흘려야 할 때 흘리지 않으면 남의 노예가 되고 땀을 흘려야 할 때 흘리지 않으면 가난하게 되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 흘리지 않으면 동물이 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땀과 눈물, 피를 흘리는 경우가 다를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만 흐르는 것은 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의 수고는 주님만 위한 고귀한 봉사였습니다. 고전 3:12-13에 “집짓는 자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으로 집을 짓고 그 공력이 불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불이 나면 짚이나 나무는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은이나 금과 보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찬란한 빛을 냅니다. 우리가 장차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자신을 위한 모든 수고는 사라져 찾을 길이 없지만 주님을 위하고 남을 위한 모든 수고는 이렇듯 보석처럼 남아 빛날 것입니다. 누가는 끝까지 수많은 고난을 인내하면서 의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지금도 보석처럼 우리 가슴에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3. 신령한 전도자 누가 누가의 입교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로 봅니다. 그 구도 초기에는 미미하였으나 그의 전도자로서의 역할은 거목이었습니다. 누가복음서에만 기록된 “탕자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 “백 마리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기록은 그의 신앙의 깊이를 이해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는 그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전도자의 심정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누가의 전도의 생애는 사도행전 16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계 1, 2,3차 전도여행의 바울과 동행, 로마에까지 동행하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지 ·정 ·의를 겸한 전도자요, 정, 동의 조화를 이룬 전도자입니다. 누가복음이 성령의 복음, 또는 기도의 복음이라고 불리우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참으로 누가는 영력이 충만한 전도자였습니다. 사랑을 받는데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육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도 있습니다. 인물이 잘 생겼다든지 음성이 아름답다든지 몸매가 난다든지 등 그 육적 조건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마음으로 사랑받는 자도 있습니다. 겸손하고 남의 수고를 담당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사랑받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가장 깊은 곳에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진정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시골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교회 교인분포를 보니 수백 마일 밖에서 오는 정치인, 의사, 학자들, 유식한 교우들이 많이 있었기에 설교할 때마다 힘을 다해 준비하였습니다. 특별히 정치 얘기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도시에서 온 신자가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가 이 시골까지 찾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철학 강의를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뉴욕과 워싱톤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영혼의 양식이 되는 신령한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은 설교다운 설교를 준비하여 설교하셨다고 합니다. 누가는 진정 신령한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영혼의 사랑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기록물에는 구구절절히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는 사랑을 받는 의사전도자였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가 많은 지식을 가졌음에도 자신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겸손하였고 의리가 있었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항상 물었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보다 우선적으로 둔 신령한 사람입니다. 그랬을 때에 그는 사랑받는 의사 누가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누가와 같이 사랑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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