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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인의 회개 (사 5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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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죄는 큰 화근거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옵니다. 선지자는 이 점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규명하여 유대 백성으로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아무런 불평도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1. 법죄한 유대인의 형편은 비참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좋은 일 즉 “빛”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는 처지에서 신음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문을 찾느라고 더듬는 소경같고 기름진 들에서 죽은 자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1) 공평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9절에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 멀고‥‥‥” 라고 했고, 11절에 “공평을 바라나 없고‥‥‥” 라고 했습니다. 국가는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물질거래에 공평하고, 법적으로 공평하고, 약한 자가 억울함을 당하지 아니할 때 그 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의 재판관들은 돈 있는 자에게 재물을 받아 재판을 그릇되게 하며 권세자 들에게 아첨하여 약한 백성들을 그릇 재판하므로 공평을 던져 버렸습니다. (2)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10절에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는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으며, 당황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소경같이 길을 더듬으며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빛에 대해서 눈감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한 모든 일에 대해서도 눈감아 버린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땅히 우리의 눈을 사용해서 보아야 할 때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치 눈이 없는 자처럼 취급하실 것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지식은 있다 할지라도 탐욕으로 양심의 눈이 어두워 소경이 되어 낮과 밤을 구별 못했던 것입니다. 지도자가 소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입니까 (3) 범죄한 죄가 다 드러나니 양심이 괴로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11절에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고 슬픔에 사로잡혔으며 그 표시가 각자의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우울해졌고 서로 교제를 피했습니다. 그들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울고 그들은 “여호와의 손이 자기들을 치신다” 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유대 민족이 죄 값으로 기근을 만나고 전쟁을 만나고 전염병에 걸려서 한없이 어려운 처지에 빠저서야 비로소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2. 유대 백성은 어떤 죄를 회개했습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심치 많음을 깨달아 양심의 가책을 아프게 받고 참된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죄 값을 회피하려고 해도 그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다윗이 회개할 때에 시 51:3에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죄목은 십계명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죄입니다. 1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데서 돌이켜” 라는 말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긴 죄를 말합니다. 십계명의 둘째 부분인 제 5계명부터 10계명을 어긴 죄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포학과 패역은 제 5계명과 제 6계명을 범함이요, 거짓말은 제 9계명을 범함이요 “악을 떠나는 자와” “탈취를 당함“ 은 제 10계명을 위반한 것입니다. (1) 여호와를 배반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1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데서 돌이켜‥‥‥”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특정한 죄목을 지적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더욱 더 뼈아프게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징계를 받는 사람이 여전히 교만하게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정죄에 굴하지 않을 정도로 오만 불손하다면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매질과 상처로 우리의 고집을 돌리려고 하지만 이 징계가 우리에게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문제가 절망적인 것으로 포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몹시 힘든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불평만 늘어 놓고 순종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은 그 백성들의 상태가 얼마나 가련한지를 애써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2) 정당한 재판을 못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14절에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라고 했습니다. 공평은 강같이 흘러야 하고 거센 흐름 같아야만 하나님의 뜻이 강하게 이루어지는데 유대 민족은 정반대로 공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었습니다. 정의를 실행해야 할 행정이 극히 큰 불의를 은폐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 했습니다. 사기와 폭력의 진행을 저지해야 할 공평은 물러가 버렸습니다. 선한 사람은 상 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어야 하는데 뇌물의 강이 흘러서 유대 백성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우리의 재판은 돈과 권세에 끌려 갔고 당파 싸움에 이용 당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점을 회개했습니다. (3) 성실한 자가 못사는 사회임을 회개했습니다. 14-15절에 “‥‥‥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적이 들어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진실이 거리에 떨어졌다는 말은 몇 사람만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라 전체 백성의 상태가 너무 부패했으므로 성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몇몇 악덕이 일반 백성 중에 군림한다면 즉 공평에 대한 여지가 남는 한 다소 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공평이 내던짐을 당하거나 전복되고 말 경우 모든 것은 전체적인 전염병에 의해 감염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악한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대낮이나 인간들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그들의 방종이 고삐가 풀린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실이 떨어진 사회에서 누구를 믿으며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를 모르고 우왕 자왕하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매우 노엽게 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당하는 환란이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죄 값으로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회개하므로 구원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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