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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의 노래 (시 14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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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의 날입니다. 매일 떠오르는 해는 어제와별다름이 없으나 어제와 오늘은 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날입니다 어제는 압박을 당하는 날이요, 주리고, 헐벗고, 갇혀 있었고, 눈이 멀었고, 일어설 수가 없었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압박에서 해방되었고, 주리던 배가 부르게 되었고, 몸에 아름다운 옷이 입혀졌고, 갇혀 있던 곳에서 쇠창살을 부수고 나와 자유를 얻었으며, 눈이 맑아졌고, 고개를 들 수가 있었으며, 마을대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자유를 찾았습니다. 행복을 찾았습니다. 민족혼이 소생되었습니다. 희망의 새나라의 행진곡이 들려옵니다. 불과 몇 시간이란 짧은 시간의 벽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차이는 너무나 커다랗습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너무나 벅차서 울었습니다. 너무나 힘이 나서 껑충껑충 뛰어다녔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우리 나라 광복이 마치 몇몇 독립운동자들만의 작품이나 되는 듯이 착각하고 날뛰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을 주시고 자유와 기쁨을 주신 것은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며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국지사들을 일으켜 독립운동을 하게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연합군을 동원하여 오만하고 잔인무도한 일본제국을 타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광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광복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국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양심에 부합한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1. 해방의 성서적 의미 (1) 민족적 해방이 있습니다. 성경은 민족적 해방, 정치적 해방을 강하게 주장하고 가르칩니다. 구약의 모세 오경을 읽어보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의 나그네 생활을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 땅에 어떻게 들어갔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족적 해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유를 쟁취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에서 독립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사회적 해방 성경은 민족적 해방, 정치적 해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해방된 사회 안에서의 구속을 풀어주는 사회적 해방 제도가 있습니다. 곧 구약에서보는 “희년제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고 모든 개인적 노예들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또 부채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해방은 사회적 내지 경제적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나 그 나라 안에는 흑인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시대에 와서 남북 전쟁을 치루고나서 링컨은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이조 말기에 와서야 개인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 그 국가 안에 있는 모든 국민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3) 영적 해방 성서는 민족적 해방과 사회적 해방을 가르치지만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깊은 의미의 해방을 선포하는데 그것은 영적 해방입니다. 이 근본적인 해방을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자유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민주 국가에 산다고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자유를 얻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십니다 주님은 다시는 죄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은 망국의 통곡으로 이 땅이 진동한 날이라면,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의 함성으로 이 강토가 진동한 날입니다. 우리는 민족적, 사회적, 종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않도록 하는 각성과 대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사색당파 파쟁이 없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사대주의 사상을 배격해야 할 것입니다. (3) 내실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냉수를 마시고 트림하는 허세를 버려야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속이 빈 자루는 서지 못하는 것처럼 내실이 없는 나라나 교회도 독립을 지탱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모두 내실을 다져 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멍에를 벗겨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해방받은 삶은 그 자유를 독점하지 않습니다. 이 고귀한 자유가 만민의 것이 되어지도록 배려하여 가능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은 헝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3 . 해방에는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사명이 있습니다 (1) 모든 국민이 여호와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나라로 만들어야 겠습니다. (2) 자유와 평화가 만발하는 나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3) 우리는 개인의 인권과 민족의 생존권과 약한 자, 굶주리는 자, 억울한 자, 압박받는 자가 없는 정의가 확립된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4) 지금부터 우리가 건설하는 대한민국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이든 신앙적이든 간에 해방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른 해방관입니다. 또한 영적이든 육적이든 간에 해방받은 사람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개 꼴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또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사람은 그와 똑같은 사슬로부터 불행한 이웃들이 해방을 받을 수 있도록 저들을 힘껏 도와야합니다. 이것이 해방을 받은 자, 즉 기독교인이 된 사람의 삶이요, 의무인 것입니다. 삼가 해방받은 자답게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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