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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마지막 기도 (고후 1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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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 자신의 확증 (1) 언제나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5절에서는 “너희 자신들이 믿음에 있는가 확증하라”고 하고는 본문 6절에서는 자신을 포함해서 사도들은 그같은 확증을 가진 자인 고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말투로 그는 언제나 자기를 내세워 자기를 본받을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사실 자기도 확신하거니와 확증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확신하라고 함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라(살전 1:6),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 영생얻은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였다(딤전 1:6)고 했습니다. (2) 자기 확신이 없으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몰래 몰래 숨기면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란 이를 남에게 확증하게 됨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공개적입니다. 믿고 변화되었으면 즉시 사울같이 성령에 충만하여 이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확증을 가지고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9:16). 이렇게 되므로 가족 중 한 명이 예수를 믿으면 그 전체 가족에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고(눅 12:51-53), 결국은 그와 그의 온 집이 구원을 얻기 마련이니 (행 16:31) 이는 믿는 사람의 속에 계신 분이 불신 가족 속에 있는 자보다 능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요일 4:3-4). (3) 공개적 신앙고백 물세례를 주는 이유는 그가 세상에서 나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대중앞에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표입니다. 은밀히 물세례를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확실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에게만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몰래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는 신앙을 고백하고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어 (행 2:38)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불신 세계를 향하여 도전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의 마지막 기도 내용 (1)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로 은혜를 주셔서 저들로 악을 조금도 행치 않기를 구했으니 이는 바울 자신의 어떤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축복을 위해서였습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7절을 해석했습니다. Once again he declares concerned only with their welfare. 그가 가르친 것은 그들이 선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만일 그들이 악을 행하면 바울의 체면은 고사하고 그들의 나중이 비참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역시 소원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서서 선을 행하는 일로써 이로 만족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2) 진리를 거스리지 못합니다. 바울의 걱정은 외부의 핍박보다 고린도 교인들의 내적 부패였던 것입니다. 혹시 그들이 부패하여 멸망하게 된다면 이는 이단이나 거짓 사도들의 유혹보다 더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진리를 다시 역설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스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오직 진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사도의 배척도 진리를 위한 것이지, 자신의 어떤 사도직 변호에 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선을 행하며 진리에 옳게 선다면 그것으로 자기는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3. 온전하게 되기를 구합니다 (1) 강하게 되기를 구합니다. 바울이 늘 약한 태도로 그들을 권면한 것은 본래 처음 전도할 때부터였습니다(고잔 2:3). 어떠하든지 그들이 성령으로 강하여지며, 담대한 신앙을 가지기를 바랬던 것이 그의 일편단심이었습니다. 교역자의 기쁨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인들이 강건하게 자라는 것, 마치 부모가 자녀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는 것 외에 다른 소원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은 어버이의 심정이 본문에 역력히 드러납니다. 이를 이해치 못하고 그를 괴롭힌다는 것은 정말 성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 온전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 환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 온전한 데 나아가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히 5:10-14). 그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정한 목표도 없는 막연한 권면이 아닙니다. 무엇이 온전케 되었다는 표준입니까 바울 서신의 종합적 표준은 아래와 같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1)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3) 성령에 충만하면 그 충만에서 나타나는 능력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4) 다시 만날 때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를 다시 써보내는 이유를 다시 한번 천명합니다. 이 다음 대면했을 때는 온갖 부조리가 해결되어 기쁨으로 피차 은혜 중에 만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대면했을 때도 여전히 그들의 부조리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성령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를 언제나 정당히 행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속히 회개치 않으면 바울도 사랑으로 대할 수 없고 엄한 심판자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는 바울이 그들을 심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이 경책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도 자신들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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