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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아하스의 통치 (왕하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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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아하스의 17년간의 통치기간 중에 그의 얘기는 비록 짧지만 매우 감동적이며, 교혼적인 두 가지 일들을 깨닫게 합니다.

1. 이스라엘의 영광은 매몰되고 마침내 수치로 변했습니다 이스나엘의 광명은 잿더미로 변했고, 매몰되고, 수치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불결했으며 여호아하스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결국 예후 왕 아래서 시작된(10:29-36)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몰락은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지배 아래서 국가가 노쇠의 밑바닥에 미치기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왕이 처음으로 영이신 참 하나님만을 예배하려 하고, 하나님 자신이 직접 주신 율례를 가지고 예배하였던 것은 이스라엘의 명예였습니다. 그러나 훗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소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들은 이 명예를 상실했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예배하는 열방들의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2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그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인 우상을 세우고 그것을 가리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神)이라고 하며 섬긴 우상주의 에서 비롯됩니다(왕상 12:26-33).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범하였던 우상 숭배(출 32:1-35)와 마찬가지 죄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큰 치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조 유다 열 지파에 대한 모든 역사 가운데서도 우리는 그 우상 숭배에 대한 아무런 공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누가 황이 되든지 간에 여전히 송아지가 그들의 신이었고 그들은 그 수치에 자신들을 맡겼습니다. (2) 이스라엘의 명예 그들은 하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다는 것과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방벽이요, 그들의 피난처요, 그들의 뛰어나신 검이라고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명예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 이스라엘아 너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에도 자주 그러했듯이,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이 영광을 빼앗셨으며, 온갖 비난거리가 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죄악에 의해 하나님을 분노로 자극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들을 하사엘 하닷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3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취한다면 이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부하와 같았습니다. 확실히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자주 그 이운 나라들에 의해 뜯기고 약탈당했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 그들 자신에게 초래된 것이었습니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아람으로 인한 많은 약탈에 의해 이스라엘의 힘은 몰락하게 되었으므로 그 왕국의 민병과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이 불과 마병 50과 병거 10승과 보병 일만으로 줄었다는 사실에서 이스라엘의 군대의 힘은 비참한 차원으로 환원되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3절) 여호야하스 시대에는 아람의 침략이 이스라엘에 계속 되었다는 사실이 여기 지적되고 있습니다. 여기 “늘”이란 말이 나왔고, 22절에 같은 사실을 진술하면서 “항상”이란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아하스가 집권하는 17년 동안 이스라엘은 늘 아람의 침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와 그 부친의 죄 값이었습니다. 1) 여호아하스는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중한 징계는 심히 부패한 자들에게 임합니다. 2) 그의 부친 예후가 우상주의자들을 징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도 그 자신은 여로보암의 우상주의에서 떠나지 않았었습니다(왕하 10:31). 이와 같이 외식한 그 부친의 죄 값까지도 여호아하스에게 임한 것입니다(출 20:5). 지도자의 타락은 확실히 그 민족을 비천하게 만듭니다.

2. 그러나 황폐된 잿더미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옛 명예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며,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아직 잊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 기도하는 민족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옛 명예의 흔적미었습니다. 4절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왕인 여호아하스는 그의 재난 가운데서 “여호와를 찾았고”송아지들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왕들은 하나님의 문전에서 구걸자가 되었으며, 인간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자가 하나님 왕좌의 발판에서 초라한 탄원자가 되었습니다. 곤경이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여호아하스는 이 때까지 범죄를 계속하여 왔지만, 환란들 당하게되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위급한 때에만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부족한 믿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렇게 무한하시고 지구성을 지녔습니다. “간구한다”는 말은 “달래다”, “어루만지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얼굴을 너그럽게 하는 것은 죄인된 자가 낮아짐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입니다. 그의 낮아짐의 구체적인 자세는 그의 간구하는 태도로 증명됩니다. “이는 저희의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가리킵니다. 그의 백성이 악인들의 박해를 몹시 받고 있을 때에는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도 합니다. (2) 이스라엘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계시는 것이 이스라엘의 옛 명예이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하십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자”란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나 혹은 그의 손자 제 2세 여호보암을 가리킨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고, 혹은 그 때에 아람의 세력을 꺾은 앗수르 왕 아다드니라리 3세를 가리킨다는 학자도 있습니다. 저자는 여호아하스가 17년 통치기간 중에 언제나 하사엘이 이스라엘을 핍박하였기 때문에 이 구원자는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가 아람을 이기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그의 선조 때로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도시들을 회복했습니다(25절).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었던 이 은혜로운 응답은 그를 인한 것도, 무가치한 그 백성들을 인한 것이 아니며, 다만 아브라함과 더불어 했던 계약을 회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긴박함 가운데서도 그 약속이 있는 이래로 줄곧 그 계약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레 26:2). 하나님께서 자비를 보여주시는 데 얼마나 신속하며, 기도를 들으실 때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은혜를 베풀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는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렇게 자주 깨뜨렸고 그 모든 특혜를 상실했던 저 옛 계약을 되돌아보시며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 여호아하스의 죽음(6-9절) 6-9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다시 징계를 받음과 및 여호아하스의 죽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 민중이 악하여서 우상주의를 버리지 않음으로 여호와께서는 다시 아람 왕을 보내어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은 심히 약해졌습니다. 이방 나라들은 우상을 많이 섬겨도 얼마 동안 계속 강대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신약 교회의 모형으로 특수한 나라였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그들은 히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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