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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 (시 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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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1) 1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우리와 관계 맺은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므로 우리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만 간구 중에서 “주께서 모든 것을 아셨나이다”고 하지 않고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나”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내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시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길을 인도하시므로 자신은 순종만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축복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청교도는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갈 때 평안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얼마가지 않아서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살 저에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양이 그 목자를 온전히 의지하듯이 우리의 심령이 참 목자이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2) 2절에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밀리서도 나의 생각 통촉하지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다 감찰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 혼자서 또는 마음 속으로 행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시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락했을때 하나님께서 “너희가 입으로는 나를 사랑하나 마음으로는 내게서 멀도다”라며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면적 행위로 섬기는 것을 원치 않고 진실한 마음에서 섬기는 것을 더 원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해야 합니다. (3) 3절에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길을 아신다는 말은 히브리 원문의 뜻으로 “나의 길을 키질하시나이다”라는 뜻입니다. 키질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내는 것입니다. 키질하는 것은 선과 악을 철저히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정화되는 것입니다. (4) 4절에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생각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말 한 마디도 조심하여 신앙 생활에 서로 덕이 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5) 5절에 “주께서 나와 전후 좌우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좌우 전후를 잘 알아서 감찰하심으로 그의 손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눈과 손 아래 있게 됩니다. 고명한 의사는 환자의 맥만 짚어 보아도 환자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조차 다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여 그릇된 길로 가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6) 6절에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의 기자는 하나님의 놀랍고 부요한 지식에 자신으로서는 다 이해할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지식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신 사건도 실상 인간의 지혜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랍고 비밀스러운 지식에 대해서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의 비밀이나 인간 타락, 그리고 구속 사건 등은 모두 비의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자기들의 이성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규정하고 자기들 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한정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인본주의 사상에 빠져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극한 상황 속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 속에 스스로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부요한 지혜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모든 사람들을 다 감찰하고 계심을 깨닫고 믿음의 굳건한 반석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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