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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의 별명 (욥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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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야기 하였었지만 혹독한 시련 밑에서 크나큰 고통과 불안을 겪으면서 그는 성급하게 주제넘는 것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호와는 욥을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40:1-8절 말씀들이 죄인들 경우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고찰하는 것입니다.

1. 죄에 대한 모든 변명은 하나님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찰할 때 명백히 드러납니다. 정당화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은 결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을 정죄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잘못된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합당한 이유로 행한 것을 정죄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우주의 어떠한 지성에 의하여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정죄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정죄하시며 죄에 대한 최소한도의 변명이나 핑계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죄에 대한 변명은 있을 수 없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잘못이거나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변명은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며 사실상 폭군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을 비난하는 사람이 됩니다.

2. 이제 이 변명들 중 몇몇을 고찰한 뒤 내가 제시한 원리들이 옳 고 정당한 것인가를 살펴봅시다 (1) 우리가 할 수 없이 죄를 범하였다는 변명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다른 어떤 변명보다도 더 흔한 이러한 변명은 시대를 불문하고 있습니다. 변명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폭군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2) 죄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는 시간의 부족입니다. 내가 나의 아들 중 한 명에게 이렇게 얘기하였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가서 이런저런 의무를 다하라 만일 못할 경우에는 죽도록 채찍을 맞으리라” 이 때 아들의 대답은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저에게 하라고 말씀하셨던 다른 일들도 하여야 합니다. 게다가 비록 내가 아무런 할 일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아버지가 허락해준 시간 내에 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도 옳지 못한 대답입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의가 부족해서 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3) 인간 자체의 본성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고 변명합니다. 무엇이 인간의 죄된 본성입니까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줄 곳 죄를 범해왔습니다. 인간의 혈관 속에 죄의 조류가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죄의 본성을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질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죄된 본성으로 인해 책망을 받아야 한다면 푸른눈이나 검은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도 책망이 주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진실을 파악합시다. 죄는 우리가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본성 자체에 깃들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죄는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악하게 사용할 때에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의 본성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 본성을 따라 죄를 짓기 때문에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4) 자기를 변명하는 죄인들은 기꺼이 기독교인이 되고자 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들이 기꺼이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커다란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꺼이 기독교인이 되고자한다는 변명은 전적으로 거짓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죄인도 실질적인 그 자신보다 더 기꺼이 되고자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5) 죄인들의 변명 중 또 하나는 자신의 환경이 대단히 특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무를 잘 알고 있으나 나의 환경이 너무도 나쁘다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현재와 같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 주여! 당신은 왜 내 환경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못합니까”라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환경 속에서 충성되게 행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6) 죄인의 또 다른 핑계는 자신의 기질이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대단히 신경이 예민합니다. 나는 성격이 대단히 느긋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것들을 다 아시면서 당신에게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 그대로 당신에게 드리시면 됩니다. (7) 변명의 또 다른 형태는 “나의 마음이 너무도 악하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사악함을 주저하지 않고 고백합니다. 이런 핑계는 옳지 못합니다. 차라리 그 사악함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8) 또 다른 사람은 나는 기독교인이 되고자 노력하여 왔다는 변명으로 자기 자신을 변론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자신의 생각에 머문 것이지 실제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자들의 핑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합니다. (9) 또 다른 사람은 “노력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노력이란 자신의 의지만을 의뢰한 것이었지 실제로 하나님께 대하여 신뢰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욕에 따라 행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먼저 자아가 깨져야 합니다. (10)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나는 그가 나를 받으셨는지, 모든 받으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은 그리스도를 거짓말장이로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11) 다른 죄인은 “나를 위한 구원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하여 일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을 위해 예비된 구원이 없다는 생각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당신에게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잠 17:16에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함은 어찜인고”라고 했습니다. (12) 어떤 자는 “내 마음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라고 변명할 것입니다. 죄인은 마음의 변화가 자발적인 것임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당신은 그것은 당신 스스로 변화시키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욕심을 극복할 수 없기에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죄인 자신의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3) 죄인은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주셔야 한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강제로 그 일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오직 당신이 그 능력을 의지하여 당신자신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14) 죄인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된다 하더라도 기독교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내가 성공하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습니다” 이렇게 변명하므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당신이 뉘우치지 않은대 대해 얕팍하고도 죄된 변론을 늘어 놓는 것 아닙니까 (15) 당신은 “나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친구는 믿을 수 있어도 무한히 참되신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까 당신은 또한 회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모든 죄에서 지금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에 가고자 결심하는 편이 당신에게는 더 나을 것입니다. 당신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모든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당신의 변명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며 사악한 거짓말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죄에 대한 모든 변명은 하나님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모 욕을 줍니다 (1) 재판장이나 입법자를 중상하는 내용의 변명은 본래의 죄를 가증 시킵니다. (2)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모든 거짓된 변명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 변명이 거짓이라면 그것 역시 본래의 죄를 가중시킵니다. (3) 하나님을 모욕하고도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 죄인의 경우 똑 같이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범죄하고 그 책임을 하와에게 돌렸고 하와는 뱀에게 돌렸습니다. 이런 변명들은 회개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를 부끄러워 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며 변명하는 일은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여전히 변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며 지나가는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 이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오늘 이 순간 회개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당신은 당신 의무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당신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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