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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릇된 기도 (전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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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말이요, 또한 우리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전도서의 본문도 그릇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릇된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범할 수 있는 잘못 중의 하나는 심사숙고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입을 열어 하나님께 고하고 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신중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급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점을 오늘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전 5:2)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 분께서 땅이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다 함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가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되어진다면 우리의 불경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좀 더 다듬어진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 되어진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깊이 숙고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1. 외식하는 기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어 뱉어진 기도는 독백이지 그것을 기도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만찬가지로 하나님을 속이는 기도도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진심은 딴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양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가증한 짓입니다. 외식하는 기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를 내어 보이려는 기도입니다. 눅 18:10-14에 예수님께서 두 가지 종류의 지도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각 다르게 기도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회당 중심에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도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다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이와 달랐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처럼 회당 중앙에서 기도하지 아니다하고 구석진 곳에서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그리고 가슴치며 기도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라는 것을 핑계로 자신의 의를 하나님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어 보이려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반면 세인의 기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아뢰는 기도였습니다. 누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세리의 기도입니다. 외식하는 기도가 갖는 특성 중의 다른 하나는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는 점입니다. 외식하는 사람의 목적은 기도의 내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보이려고 하는 기도이므로 무엇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다시금 상기해 보십시오. 그의 기도에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오직 그는 자신의 외로움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는 기도에 어떤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기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증언 부언하는 기도 신중함이 없는 기도, 외식하는 기도에는 필시 많은 말이 따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이 많은 기도의 허구성에 대해 전도서 기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 5:2-3)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말을 많이 하는 자의 기도는 우매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증언부언하며 말을 많이 하는 기도의 허구성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증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7-8)고 했습니다. 우리는 대개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많은 말을 하는 기도를 즐겨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성경에도 분명히 나타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이고 하나님께서 즐겨하시지 않는 기도입니다. 사실 참된 기도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많은 말을 하나님께 쏟아 놓는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조용히 귀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나 많은 말이 아닙니다. 비록 입이 둔하여 말을 못한다 하더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가진다면 바로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입니다. 간절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도는 결코 증언부언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갖고 단순한 언어로 자신의 소원을 담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에는 자신의 자랑거리를 내어 놓을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만을 가질 것입니다. 눅 8:42-48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12년 동안 고질병으로 고생하던 중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소문을 듣고 간절히 예수님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예수님의 능력에 의해 치료받을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혼자서 조용히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져 보기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갔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간절한 소원과 믿음이 있었으므로 군중의 숲을 뚫고 마침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나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간을 통해 참된 기도의 방법을 보게 됩니다. 이 여인은 많은 말도, 어떤 미사여구나 자신의 외로움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간절한 소원과 확신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기도에 기적이 베풀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간절한 소원과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의 부족한 점을 정성을 다해 아뢰십시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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