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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침묵 (마 2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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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 말을 많이 하는 것은 경망스럽기 때문이요 말을 해야 될 경우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이라고 다 귀한 것도 아니며, 침묵이라고 다 값진 것도 아닙니다.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침묵할 때, 무게 있고 값진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침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비난 앞에서의 침묵이었습니다. 비난은 누구에게나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옛 사람은 말하기를 비난과 남의 말 하는 것은 혀끝으로 범하는 살인행위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비난받으면 고민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예수를 비난한 자들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이었습니다. 그들 손에 예수의 생사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끝내 침묵을 지키신 것입니다. 책잡기 위해 묻는 그들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링컨은 말하기를 “비난이 사실이라면 변명할 필요가 없지만 만일 허위라면 더구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예수의 침묵처럼 비난 앞에서 침묵하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칭찬 앞에서도 침묵하여야 합니다. 칭찬은 들어서 불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칭찬 몇 마디 들었다 하면 그냥 들떠서 안절부절이요, 갑자기 높아져서 안하무인격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일은 비난을 받는 때보다 칭찬을 받는 때가 내게 위기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선한 선생이라고 말한 청년의 칭찬에 지극히 냉담하셨고(눅 18:18-19),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의 환호성에 오히려 고독을 느끼셨을 만큼 칭찬에 주의했습니다. 칭찬 앞에서 들뜨지 않도록 조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약자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강자 앞에 약해지는 것은 교활한 소치요, 약자 앞에 강해지는 것은 옹졸한 소치입니다. 그런데 흔히 강자 앞에는 약하고 약자 앞에는 강해지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삽니다. 주님은 약한 자, 죄인 앞에서 늘 사랑으로 대하시고 이해하려는 약한 자의 모습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의의 보상이 십자가냐고 가룟 유다처럼 반항하기도 쉽고, 베드로처럼 칼을 휘두르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능자처럼 십자가를 감수하셨고 죄인처럼 말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말이 많고 불평과 반발이 많습니다. 실패, 가난, 질병 등 십자가 앞에서 침묵해 보십시다. 주님의 침묵에 대하여,

1. 주님은 왜 침묵하셨습니까 (1) 주님은 고독을 좋아해서 입을 다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혼자 계시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혐오나 환멸을 느끼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고독에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고독한 영혼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즉 더욱 많은 일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은 질문자에게 대답할 말이 없어 말문을 닫은 것이 아닙니다. (3) 주님은 무슨 잘못이 있어서, 할 말이 궁해서 대답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4) 주님의 침묵은 무슨 죄책이나 비밀을 은폐하기 위하여 침묵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맞선 것은 로마법관 빌라도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제사장들이나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모든 인간의 악의 총화 앞에 맞선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함과 거짓의 대결이 그리스도가 받는 목적이었습니다. 폭력에 대항할 대안도 있고, 음모에 대처할 방안도 있고, 악과 더불어 투쟁할 능력도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침묵하심으로 그 모든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었습니다.

2. 악이 승리하도록 내어 맡기는 침묵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악당들에게 붙잡히실 때 “이제는 너희의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악의 세력에 굴복한 것도 아니요, 악에 대처할 실력이 없어 그러한 것도 아닙니다. 악의 세력 확장으로 그 악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일단 악에게 자신을 맡겨버리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단념이나 체념이 아닙니다. 골 1:13의 말씀대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려고 흑암의 권세에 자신을 내어 맡긴 것입니다.

3. 어린양의 침묵입니다 사 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서 침묵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관은 이와 같이 깊고 높고 넓습니다. 악을 대할 때 악인과 같이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악인이 쓰는 방법에 맞서서 같은 악의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가시관이 씌워져 있었고 등은 채찍을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처하는 그리스도의 자세는 침묵뿐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베드로는 고난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연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3). 남에게 한마디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서 몇 마디 변박하려는 자들은 예수의 침묵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시끄럽고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그 교회 안에 침묵의 덕을 가진 자가 적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곳인 만큼 말썽이 있기 마련입니다. 침묵의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평온할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 중에 흠을 잡으려 하면 책잡히지 않을 자 어디 있으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자 어디 있겠습니까 갈 5:15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에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정당성을 확인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의 눈에는 침묵을 지키는 예수가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힌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밝히는 지혜보다 침묵하는 지혜가 더 높은 도덕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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