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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 (왕상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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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을 둘로 나누면 율법과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율법을 대표하는 자는 모세이며, 예언자를 대표하는 자는 엘리야입니다. 이 두 사람은 주 예수가 산 위에서 변모하실 때에 나타났었고(마 17:3, 막 9:4, 눅 9:30) 장차 환란시대가 되면 3년 반에 걸쳐서 예루살렘에서 반 그리스도와 싸우는 두 사람의 증인이 있는데,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 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계 11:3). 이 두 사람 중에 모세에 관하여 민 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약 5:17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를 하나님이 쓰셔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고 비도 내리시는 영광을 나타내시었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그것이 어떠한 죄인이든지, 약한 자이든지 간에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기어질 때 벌레 같은 사람도 쓰임 받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기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후 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약한 육체의 소유자라고 했습니다. 그 육체에 있는 가시를 하나님께서 제거하여 주시기를 세 번이나 기도 드렸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서한 중에서 “만나보면 그 외관은 매우 약하게 보였다” 고 기록한 것과 같이, 그 용모는 사람들을 매혹할만한 미남자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는 당시에 있어서 예루살렘의 석학 가말리엘문하의 수재였습니다. 그러나 고후 10:10에는 그의 말은 시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설교는 웅변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한 중에 고전 2:3-4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결코 초인이 아닌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질그릇을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보배를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1. 하나님 임재의 장소 그릿 시냇가 하나님은 엘릴야에게 임하시고 말씀하시기를 3절에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예언자와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내시고, 비를 내리시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시기 전에는 혼자서 그릿 시냇가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릇이 인간 앞에 놓이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면전에 서서 초자연적인 표적을 행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전에 미디안에서 40년간의 은둔의 목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모세의 그릿 시냇가입니다. 주님께서도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의 탄식과 마귀의 시험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 예수의 그릿 시냇가입니다. 사도 바울도 세계 선교의 사도가 되기 전에는 아라비아에서 3년간의 은둔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그릿 시냇가였습니다. 요한도 하나님의 나는 승리의 묵시를 보이기 위해서는 밧모섬에 격리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곳이 요한의 그릿 시냇가입니다. 우리들의 그릿 시냇가는 어디입니까 사업의 실패, 사람들로부터 오해, 깊은 실망 등일 것입니다. 이 모든 그릿 시내가 성화되어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곤란 중에 던져져서 그 곳에서 절대적 신임과 복종 등을 배우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일을 위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룩한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 까마귀는 어디서 왔습니까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르앗 땅을 떠나 그릿 시냇가로 가서 있었더니 과연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어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러면 이 까마귀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 까마귀들은 우연히 어떤 산에서 온 까마귀가 아닙니다. 까마귀는 특이한 새입니다. 까마귀는 어미가 늙게 되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가 자기가 먹지 않고 제 어미를 먹입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가리켜 “반포지조” 라고 하여 은혜를 갚는 동물 이라고 부릅니다.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가져오는 까마귀는 제 자의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앞으로 3년 6개월간이나 가물게 될 때 물도 없고 양식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비상하게 역사하신 것 입니다.

3. 말라가는 물의 근원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릿 시내의 급류는 점점 늦어졌고 물세의 흐르는 소리는 매일 약해 가고, 계곡 바위 표면에 밀생하는 이끼도 다 메말라 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물의 흐름이 메말라 가는 모습을 한참 응시하며 서 있는 것은 백만의 대군을 적에게 보내며 싸우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그 곳에서 엘리야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것은 무한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곳에서 배워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기대일 것입니다. 가령 우리들이 하나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 신뢰를 의탁한다면 그로 하여금 마르지 않은 생명수가 되신 하나님 자신에게 기대를 갖게 하시려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필요하다면 항상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십니다. 고대 2,000년에 이르는 기독교사는 항상 목이 마르도록 대망하는 영혼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생명수를 부어 성령을 충만케 하시고 그의 하시는 역사를 진행하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말라가는 그릿 시냇가에서 무한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바라기는 현대에 사는 우리들도 “사람의 지혜를 초월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풍성하신모든 것으로 풍성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다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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