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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땅히 두려워할 자 (눅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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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설교를 할 때 어떤 논리에 의해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아도 절구 절구가 진리이면 괜찮다는 형식을 많이 취합니다. 이런 형식을 Charaz라 하며 그 뜻은 서로 다른 진주알을 실에 꿰놓은 것을 말합니다. 가령 우리가 구약의 잠언을 읽어보면 전후의 진리가 연결성이 없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절구 절구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그런 점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1. 위선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3절에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외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외식이란, 말은 매끈하게 하지만 생활이 따르지 아니하거나 속으로는 이리의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양처럼 한다거나 의식은 따르면서도 그 정신이 함께 따르지 못할 때 그것이 곧 외식입니다. 외식이란 한 마디로 성실치 못한 언행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가장한 외식하는 사람보다 솔직한 죄인을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 왜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까 2절 이하에 보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기 때문에 바리새인의 외식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속으로 감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밖으로 밝히 드러납니다. 속이는 것도 잠간 동안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이 밝은 데서, 골방에서 말한 것이 공중에 전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반드시 밝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식으로 잠시 거룩한 모습, 진실한 모습은 보일 수 있지만 얼마 오래가지 못해서 그 거짓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전도서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기록된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서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갔습니까 얼마가지 않아 말라버리고 실체가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외식하는 일은 마치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켜 하는 어리석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삼가 피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1)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1) 그 이유는 사람의 세력은 이 세상에서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불의 앞에 강한지 아십니까 목숨이 끊어질 줄을 알면서도 정의를 위해 과감히 나서는 것은 불의한 세력이 우리의 육신은 죽일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분명히 손을 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믿는 성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나 실상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본문 4-5절에서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혀워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 1:10에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에게 좋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담대히 이 사실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의 돌보심은 너무 세밀하시고 자상하시기 때문입니다. 6절에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참새 몇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그러나 이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안된다는 일입니다. 7절에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인간도 내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세지 못하고 사는데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을 다 세시고 우리의 적은 일까지 모르심이 없으시고 주관하시며 돌보고 계시므로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참새보다 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돌보십니다. 사 41:8-10에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 43:1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감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신 10:12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라고 하였고, 수 24:14에는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고 하였으며, 잠 1:7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일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겉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까지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사람의 외적 행동만 살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행동의 배후에 숨은 동기까지 다 살펴보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일까지 살피시고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해 간음한 죄를 숨기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일시로 사람의 눈을 가리운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해 그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은 삼십냥에 은밀하게 팔았으나 2,000년 내려오는 오늘까지 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냥에 팔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죄까지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죄를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써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덮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큰 오산을 한 것입니다. 회개하여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그 믿음을 의로 여기사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형벌하십니다. 민 32:23에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비밀 가운데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보십니다. 프린스톤 대학 초대 학장인 죠나단 에드워드 목사님께서 한번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죄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 중에 “마치 죄인이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잡힌 것은 어떤 사람이 아주 흉칙한 벌레를 손에 잡고 불에 던지려고 하는 것 같은 운명에 있다”고 하는 설교를 해서 온 청중들을 회개케 했다는 것입니다. 마 25:41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또 막 9:47-48에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참으로 두려워할 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보이는 것 같이 그 앞에서 사는 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항상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을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를 합니다. 죄를 묻어 두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회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을 때는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모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게 됩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으면 이 두려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변해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다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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