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반역자의 말로 (행 01:15-20)

첨부 1


1. 다락방 성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의 수효는 백 이십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행21:20에는 유대인 중에 믿는 사람이 수 만 명이었다고 하였으며 마태복음14장에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이적이 나타났을 때에는 먹은 자의 수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라 하였으며 고전15:6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하셨는데 예수 승천 후에는 이 많은 무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지고 모인 예수 제자의 수는 백 이십 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라 다녔던 무리들은 예수를 따라 다니되 참 제자로 따라 다닌 것이 아니라 빵을 위하여 또는 병 고침 받기 위하여 구경거리로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찾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진심으로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백 이십 성도들과 같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고 주님을 나다려 주님 재림시 공중 휴거당하기를 바랍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 인구는 사백만 명이었는데 겨우 백 이십 명의 적은 수였고 이백 이십 명의 성도가 전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명을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미미한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2. 반역자의 말로 15절에 백 이십 명의 대표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형제들아 반역자 가룟 유다의 말로가 성경대로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열두 제자의 이름을 보면 제일 처음 순서가 베드로였고 제일 마지막 순서가 가룟 유다입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이름이 양극단이요 그들의 역사의 결과도 양극단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으나 끝까지 회개하여 주님을 사랑하여 따랐으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고,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뉘우칠 뿐 결코 회개하지 않다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고 자기도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의 부르심도 같이 받고 예수의 교훈도 같이 받았으나 그 결과는 이렇게 엄청나게 달랐던 것입니다. 16-17절에 보면 “베드로가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잡는 자들을 인도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자살 사건은 예루살렘 시민이 다 아는 사건이지만 누가는 이방인 사도행전의 독자 데오빌로 각하에게 성경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알리기 위해 자세히 적은 것입니다. 이 예언은 시69:23-29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희 눈을 어둡게 하사 보지 못하게 하며 주의 맹렬하신 노로 저희에게 비치게 하소서 저희 거처로 황폐케 하사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저희 죄를 정하사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를 생명책에서 제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또 시 109:7-8에 이르기를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년수를 단축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가룟 유다의 비참한 최후도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요 가룟 유다 대신 사도를 보결 선거하는 것이 베드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이 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반역했던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유다는 갈릴리 사람이 아니고 예루살렘 사람임으로 갈릴리 어부 갈릴리 출신 제자플과 잘 융합이 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그가 돈을 탐하던 자로서 예수의 제자들의 재정을 맡았다가 금전의 유혹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장례를 기념하기 위해 삼백 데나리온 가치가 나가는 향유를 가져와 예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서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비로 쓰는 것이 합당하지 왜 소비하느냐고 하였습니다. 모두 돈을 탐했던 것으로 주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았던 것은 아닐지 (3) 가룟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단도를 휴대한다」라는 뜻으로 그 는 민족해방 운동자 중 조국 광복을 위해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잘 조직하여 혁명을 일으켜 보려 하였으나 주님은 폭력, 권력, 무력, 완력을 거절하셨고 지상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메시야임을 알고 실망하여 주님을 팔았던 것일까 (4) 가룟 유다는 사람을 속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는 가룟 유다 의 마음까지 다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결국 자기의 실체를 알고 있는 예 수를 없애버리게끔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5) 또는 가룟 유다는 예수가 이적을 베푸는 능력으로 죽지 않고 적 수 로마의 군사를 무찌를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모든 것이 그릇됨을 알고 심한 후회로 자살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하간 마 27·:3-5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았던 은 삼십 냥을 성전에 던지고 목을 매고 죽었고 제사장들은 그 돈으로 밭을 샀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역사상 가장 악한 사람이요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을 팔았던 사람에게는 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3. 아켈다마(피 밭) 18-19절에 보면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켈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목을 매어 자살하였으나 거꾸러져 넘어져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습니다. 이 밭을 제사장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고 성 전에 던지고 갔던 바로 그 돈으로 사서 공동묘지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가 불의의 삯으로 밭을 샀다는 말은 가룟 유다의 피가 묻은 밭이라는 뜻으로 스승을 판 피묻은 돈으로 산 밭이라는 뜻입니다. 악인을 가리킨 예언이 응한 것을 보면 악인의 말로에는 보응이 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켈다마라는 피밭이 가룟 유다가 무죄한 예수를 팔고 심판을 받아 죽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으므로 그 오명을 씻을 길이 없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반성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를 파는 자가 없습니까 예수를 자기의 영리적 도구로 사용하는 자는 없습니까 성직자의 이름을 팔아 속이고, 교회의 직분을 팔아 속이고, 성도의 이름을 팔아 속이는 자는 없습니까 가롯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여 망했고, 창자가 터져 탐욕하던 재산도 결국 얻지 못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직분을 빼앗기고 영원히 저주의 자리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주의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축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