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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민의 의식 교육 (신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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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의식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산 교육을 시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특히 종교의식은 살아있는 교재요, 생동력있는 실제교육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의 기원은 구약시대의 제사정신을 이어 받은 뿌리있는 종교의식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은 생활 속의 실제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바른관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막상 어려움을 당해도 굴하지 않는 믿음이 약동하였습니다. 다니엘이나 요셉의 신앙을 옳게한 것은 의식교육의 결과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지혜의 책이라고 부르는 탈무드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습니다. 일찌기 동양 윤리는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과 같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대학총장실을 점거하고 교수가 학생들 눈치를 보며 구타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세상이니 이유야 어떻든 윤리가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다는데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교육부재”라고들 개탄하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육방침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모세가 받은 율법의 본질 본문은 모세가 받은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6:1) 등이 있고 이는 신앙인의 교육의 기본 방침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도덕법 영원불변한 것으로써 십계명을 말합니다. 이 첫 부분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로써 예배의 의무와 방법, 그의 이름과 날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은 인간 상호간에 대한 의무로써 “우리와 세운 언약”,(신 5:3)입니다. 이는 세상적인 도덕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주님께서는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를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2:34-40). (2) 시민법 선민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주신 법으로 선민의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것을 교훈하며, 도덕법이 아니지만 오히려 신약에 재현될 뿐 아니라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3) 의식법 제사법, 성결법, 종교적 의식행위에 관한 법을 일컫습니다. 특히 레위기서는 의식법전으로 유명합니다. 이 모든 의식법은 장차 재림할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요 비유입니다(히 9:9-10). 의식법의 중요성은 하나님의 요구에 있습니다(6:2, 7-9). 그러므로 더욱 정성을 기울여 깊게 옳게 연구해야 합니다.

2. 의식교육의 의의 하나님께서는 의식법을 통해서 각종 종교적 제도를 세워주시고 이를 실행케 될 때 놀라운 역사가 수반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생활을 영위하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바른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삶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는 사실을,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예배의 근본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의 수단을 통해서 가까이 하시며 의식은 말씀을 중심할 때만 실효합니다. (2) 메시야를 통한 속죄의 감사제를 표현합니다. 구약의식은 희생적 성격을 지닙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바가 되었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히 19:22, 레 17:11-12). 주님은 율법을 완성시켰으며(요 19:30), 예배의 본질적 원리(출 12:1,요 4:23-24)와 구속 사역의 확실성(요 14:6)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식은 나와 하나님을 발견케 하는 것이어야 하며, 말씀을 받고 믿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3) 의식을 통하여 선민을 축복하시려고 예배는 내용과 형식의 함수관계에 있으며 이같은 집행의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강림하여 축복하십니다(출 20:24). 이는 예배학의 원조가 됩니다. 따라서 이 사역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예배의식에 끓임없이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히 10:25).

3. 선민의 의식교육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의식교육의 실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곧 하나님과의 임재와 축복을 경험케 하는 임마누엘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복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복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자를 좇아다닙니다. 이는 의식교육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되 말씀에 따라 예배를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계 1:3). 의식교육의 내용은 다음의 것이어야 합니다. (1) 신앙교육 “자식들에게 신앙적 생활에 강요하지 않겠다 스스로 택해야 된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나 이는 마귀의 역사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꽃밭도 가꾸지 않으면 잡초밭이 되기 마련인 것은 식물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마찬가지 원리인 것입니다. 아이들 진학문제, 기호문제도 부모는 간섭하면서 신앙만은 자유라 한다면 분명히 선민의식 교육에 역행하는 교육일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교육은 어려서부터 실시해야 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본다면 그는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신앙교육으로 자란 자입니다. 그는 후에 이스라엘의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사울 왕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주였고 영적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였고, 제사장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힐딩 할비튼이 자기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놀면서 주고 받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우리 아라는 사장님을 잘 안다”라고 말하자, 할비튼의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하나님을 잘 안다”라고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할비튼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는 자기 서재로 들어가서 실컷 울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서 바른 사람이 되게 하려면 일찍부터 시켜야 합니다.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경 말씀을 배우도록 인도합시다. (2) 생활의 교육입니다. 신앙교육은 생활입니다. 즉 신앙교육은 어떻게 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기독교인이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란다” 라고 열심히 말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직 제 주변에서 기독교인을 본 일이 없는걸요”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생활교육은 말로 되는 교육이 아닙니다. 생활교육이야말로 시청각 교육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리고 가슴으로 느낄 때 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프랑스여 훌륭한 어머니를 가지라 그러면 프랑스는 훌륭한 아들을 가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어머니야말로 훌륭한 아들을 낳게 되고 훌륭한 아들이 자라서 훌륭한 프랑스를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말하기를 “어머니는 국가의 생명에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다”라고 했습니다. 학교교육은 자녀들에게 지식 이상의 것을 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과 교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뜻은 우리가 보여주어야 교육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는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고 우리가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한 교과서는 성경이며, 안전한 교실은 가정과 교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선민의식 교육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1) 자녀를 위해서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기도합시다. (2) 자녀를 교회로 인도합시다. (3)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4) 본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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