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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화의 복음 (엡 0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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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어떤 자리에서 모교회 지도자가 한국에는 전쟁이 없다, 남북은 평화 통일이 된다고 예언 설교를 해서 모든 신자들이 할렐루야를 부르며 판문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저는 놀랐습니다. 복음과 예언을 함부로 파는 약 장수 행상의 코미디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루터시대의 교황청이 헐한 값에 속죄부를 파는 것과 같은 범죄라고까지 느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가나한 복지로, 사막에서 강변으로, 수난에서 영광의 내일을 바라보는 비전은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말 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화해의 복음에서만 이 평화의 세계건설의 비전을 볼 수 있는 진리를 배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대로 평화와 자유의 세계, 하늘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룩하시는 데는 그 둘 사이의 담을 무너뜨리시고, 둘이 하나 되게 하시고, 원수된 것을 자기 몸으로 해소시킨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화해의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화해의 복음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까

1. 화해의 복음은 진리를 위한 사람의 투쟁 속에서 선포됩니다 미국 흑인 혁명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인도의 간디의 비폭력 운동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인간애를, 사랑을, 흑인 민권운동의 방법으로 삼았고 백인과 흑인의 화해 공존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킹 목사가 혹인 동료들에게 “그 일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없는 사람은 살 자격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 동료들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죽을 각오를 가지고 흑인 민권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화해의 복음은 마르틴 루터 킹과 같은 사람을 통해 선포됩니다. 나라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십자가의 정신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화해의 복음은 선포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화해의 복음을 곳곳에서 외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십자가의 회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에 입으로만 떠드는 생명 없는 복음 선포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평화의 복음, 화해의 복음을 행동으로 전할 사람이 요구됩니다.

2. 평화는 사랑을 기초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 불란서의 어느 작은 마을에 지난 제 2차 대전 중에 전사한 불란서의 게릴라 부대원 수십 명의 무덤이 있는데 이에 섞여 한 무명 독일 병사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종전된 지 수 십년이 경과한 지금에도 이 무명 독일 병사의 무덤 앞에는 계속 헌화되어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인즉, 급격한 독일군의 공격으로 점령당한 지역에서 불란서 청년 중에서 수십 명으로 조직된 게릴라는 나치군을 몹시 괴롭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이 다하였는지 전원 체포되어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게릴라와 같은 수인 독일군은 집총, 쏘아 하는 호령을 기다리는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한 독일 병사가 “대장님! 나의 앞에 선 불란서인은 중상을 입고 완전히 전투 능력을 왔고 있습니다. 이런 중상병을 쏘아죽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굴복을 당해본 일어 없는 대장은 입에 거품을 내면서 “잔말 말고 쏘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쏘아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병사는 총을 발밑에 놓고는 앞으로 서서히 나가 중상으로 신음하는 불란서 병사를 부축하여 끌어안았습니다. 다음 순간 불을 뿜는 총탄에 맞아 그 두 병사는 끌어안은 채 숨졌습니다. 여러분! 이 독일 병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리석은 개죽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리석은 개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죽어야만할 게릴라를 죽인 대가를 책임질 것도 아닌데 나나 살 것이 아닌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독일 병사의 죽음이 이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치의 잔학 행위 속에도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잊을 수 없는 희망을 안겨준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치의 포학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지는 양심과 선의를 전 세계 사람들에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랑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들은 인생에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통 세상인심이 시기와 마음의 갈등으로 꽉 찬 그 살벌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삶의 가능성과 신뢰감을 가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독일 병사가 남긴 죽음의 고귀한 선물입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름도 나이도 군번도 모르는 무명의 적국 한 병사의 무덤 앞에 전후 수십 년을 거치면서 아직도 그 헌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죽음의 선물에 대한 인류의 감사의 표현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포악한 나치는 히틀러와 함께 멸망하였지만 이 독일 병사에의 동경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을 훈훈하게 하여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걸핏하면 힘, 자본, 무력, 남을 굴복시키는 권세만이 위대한 것으로 존중되고 실재되는 것 같이 판단되고 사랑 같은 것은 있으나마나 밀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간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답게 만들도록 누벼가는 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고대 로마제국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과 같이 역사의 탁류 속에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로마는 사라졌지만 사랑은 인류가 영원히 존재하는 한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3. 평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됩니다 우리가 암송하는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는 소원은 이 땅 위에 평화하기를 대망하는 혼의 부르짖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소망의 성취는 단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길 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서로 원수된 것을 자기 몸으로 해소시키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가 십자기의사랑으로 이루어져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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