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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교도의 신앙 (고후 0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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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본문을 기초로 해서 청교도의 신앙을 다시 한번 생각하려 합니다. 더러운 것을 온전히 버리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생활을 이루겠다는 것은 사도시대 이후의 모든 경건한 신도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요 목표였던 것입니다. 물론 일반 교계가 부패하여진 시기에도 이름은 다르나 목적은 이와 같은 운동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일어났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중고 시대에 교회가 침체하여졌을 때에 조용한 곳을 찾아 자기의 생활을 깨끗이 하려고 애쓴 수도원 제도가 발전되었고, 칼빈의 종교개혁도 다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이 모든 것이 청교도가 아닌 것은 아니나 교회 역사상 청교도라 함은 17세기 중엽 영국 제임스 1세로부터 찰스 2세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영국 안에서 당시 로마 교회로 기울어지려는 경향과 영국 국교를 상대로 순수한 신앙을 위하여 투쟁한 신자들과 이들 중에서 핍박을 피하여 미대륙에 이주하여 뉴잉글랜드 주에 교회를 세우고 미국을 건설한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독일이나 스위스의 그것과는 그 성질이 다릅니다. 영국은 16세기 헨리 8세 때에 로마 교황과 관계를 끊고 영국 국교를 설립했으며 왕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켄터베리 대감독이 교회를 지도하였으나 로마교회의 잔재, 즉 제사의 복장이나 예배의 의식같은 것은 그냥 답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일과 제네바의 개혁을 아는 자 중에서 이에 불만을 품고 이 잔재를 일소하고 순수한 기독교의 확립을 원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시 국교의 의식주와 복잡한 성례, 감독, 정치 등을 반대했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이를 피해 북미주에 이주하여 새 나라를 건설한 이들도 청교도들이었고,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국내 혁명도 이들의 손에 의하여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들 청교도들이 가졌던 신앙과 생활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오늘날 위기에 처하여 있는 우리 한국 교계를 돌아보며 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것입니다.

1. 그들의 특색은 신앙의 기초를 성경에서 찾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성경 중심이며 성경을 무엇보다도 존중했고 애독했습니다. 1611년 제임스 1세가 54인의 학자들을 명하여 영어로 번역케 한 신구약 성경을 그 후 3년만에 완성해서 이를 흠정역 James Veraion이라고 하는 바 이를 애독한 청교도들은 생활과 도덕의 표준을 여기서 찾았고, 교회와 국가의 정치적 표준도 여기서 얻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역사가「그린」은 말하기를 “영국인은 오직 한 책만 읽는 민족이 되었는데 그 책은 곧 성경이다”고 말하였습니다.

2. 그들의 신학 사상은 단순하였으니 사도 바울, 어거스틴, 칼빈 을 통하여 전하여진 칼빈주의가 그들의 신학 사상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으므로 인간의 자력으로는 자기를 구원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으로, 그의 사랑과 자비로 인하여 십자가의 주를 우리가 공손히 믿으므로 구원을 얻는다는 단순한 신학 사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배도 하나님 중심의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의식주를 배제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대로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정신적 신령한 예배를 엄숙하게 드렸던 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의 예배가 엄격하였든지 뉴잉글랜드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졸든가 웃든가 하면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이러한 신앙을 가진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지극히 엄수하였으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레 중에 하루를 하나님께 드려 이 날을 하나님의 날로 정하고 성전에 나아가 예배를 보고 예배를 본 후에는 전도와 위문에 힘썼으며, 경마나 연극 같은 오락을 금지 하였고, 또 노동하는 것을 금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덕 생활도 아주 엄격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은 그들의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그 들은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희생도 아끼지 않고 이를 강행하여 인간의 체면에 대항 한 것이 그들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염원은 하나님의 뜻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정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활은 자연히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또 근면, 정직하였으며 충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절제 생활을 하여 술과 경마와 연극같은 오락과 향락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이 없는 건전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그들의 윤리사상의 근본 원리였던 것입니다. 이상 말한 것이 역사적으로 고찰한 기독교 중심생활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반면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중심을 떠나서 좌우 곁길로 나가는 사조가 있습니다. (1) 신신학의 사조가 있습니다. 이 사상은 과학적 분위기에 싸인 현대인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사상적으로 세상과 타협한 신학인 바 이 사상은 자연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그 골자로써 근본적으로 불신의 태도에서 나오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초대교회로부터 나타난 것인데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니 2세기의 노스틱주의, 4세기의 아리우스주의, 그 후에는 페라기우스주의, 종교개혁 이후에는 예수가 인간, 즉 위대한 인간이라는 소시니아주의,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특히 독일 튜빙켄 대학을 중심으로 한 현대주의 사상이 신신학으로 우리 교회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적 태도를 희미하게 하며, 신앙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스트라우스 같은 이는 성경을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예수님의 생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신화라고 주장하여 교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결국 그는 말로에 유물론적 무신론자로 전락하여 죽었고, 이 사상의 지배를 받은 독일 교회는 아주 무력한 교회가 되어 생기를 잃고 결국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에게 좌우되는 교회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신앙적인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성령이 임하는 것이지 불신하는 태도와 불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얼른 생각하기는 그 시대의 사상과 타협하여 가면서 전도하면 신자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실제로 타협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죄와 싸우는 데서 회개하는 사람을 많이 얻는 것이며, 죄를 책망하지 않으면 귀로 듣기는 좋을지 모르나 절대로 회개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극단적 영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성의 요소를 전혀 무시하고 극단적인 감정에 흘러 광신 또는 미신에 빠지는 사상입니다. 이들은 자연히 중등교육도 안 받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고 자기의 Complex를 신앙으로 풀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면서 사회악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뿜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자기만 의롭다. 자기만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습니다. 이들은 기성교회를 부인하고, 교역자를 부인하며, 극단적 문자주의에 빠져 성경의 근본정신을 망각하며 사소한 문제로 교회의 분열을 꾀하며 교회의 분해작용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대의 몬타너스, 도나토스주의가 그러하며, 종교개혁 이후 재세례파, 칠일 안식주의파 등이며, 한국에서는 새 주파와 용문산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상이 교회를 잠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들은 오늘의 한국 교계와 전 세계의 영계의 안목으로 볼 때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양대 강적이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유물주의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말을 타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무산자의 해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인간의 최대 본능인 물욕에다 호소하여 인간을 동물로 환원케 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유물론적 견지에서 인간 생명을 경솔히 여겨 테러, 방화, 약탈, 살인, 숙청 등을 일삼고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속주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과 세상 것을 타협하려고 하여 세상의 오락과 향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예수도 믿고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들은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며 투전도 하며 이혼도 하고 주일날에 오락도 하는 등 넓은 길, 넓은 문에서 예수 믿자고 하는 자들인데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는 이 양 세력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신학이나 또는 감정주의, 맹목적 미신론주의 등의 사상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오직 성경을 기초하여 복음적 신앙인 청교도들의 신앙으로 십자가의 군사로서 사명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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