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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사람 이사야 (사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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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국가의 난제를 근 심하여 성전 깊숙이 들어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이사야에게 이상이 나타났습니다.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니 온 성전의 문지방이 요동하며 연기가 집에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기도하는 중 거룩하시고 영광이신 하나님을 보았으며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사명까지 깨달아 하나님에게 소명자로 부름 을 입계 된 것입니다. 기도는 이같이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뿌리의 역할을 하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세례받으신 이 후 광야에 서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시며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변화산상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 서까지 기 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기도에 힘써야하며, 사도 바울이 빌 1:4에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노라”고 하신 말씀처럼 기도에서 기쁨을 찾아야겠습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언제든지 그들은 모일 때마다 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매일 4시간 이상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종교개혁의 역사와 힘은 그 조용한 시간에서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결코 허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일에 빠져서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너희가 세상에 거하되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 고 하 신 것 같이 우리들의 영원한 집은 하늘나라입니다. 이같이 주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세상에다 영원한 집을 준비하느라 애쓰고 우리 자신이 내 생명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기에 하 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악이 너무 가득하므로 우리는 기도생활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생활에 자신을 의지하고 자기 수완을 중요하게 여기며 세상 안일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기도가 나태의 웅덩이게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으며 열심히 기도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들의 생애 있어서 어떤 난관에 봉착하여 그야말로 매일과 같이 평소에 믿고 있던 일이 파괴와 실패로 돌아갈 때 비로소 느끼며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 때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곤역도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니 실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야 겠습니다. 본문의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하고 부요한 '나라가 되었던 것은 웃시야 왕이 그 나라를 잘 통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황금시기는 웃시야 왕이 다스린 때였습니다. 참으로 그는 현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이 위대하고 존경받던 왕이 죽은 것입니다. 웃시야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자유, 안보, 힘, 평화 이 모든 것을 말하는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제 웃시야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자유, 안보, 힘, 평화 이 모든 것이 곧 사라지게 될 형편이므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위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어려움이란 것은 세계적으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욜 때 그 수습책도 유사합니다. 모든 위협과 난국을 당할 때 도리어 하나님께 반항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는 이런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발견하였고 하나님께서도 기도하는 이사야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어려운 일이 개인적인 것이든, 가정적인 것이든, 교회적인 일이든, 또는 국가적인 일이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름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을 산십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이 5달란트이든지, 2달란트이든지, 1달란트이든지 관계없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난국을 해결하며 또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지자 이사야에게 있어서 그 당시의 위기는 그 저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당면한 문제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스스로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이사야는 젊었지만, 웃시야 왕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가 죽은 것과 같은 생각을 하여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생의 문제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나의 안일함과 안전 과 쾌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넓으시고 사랑 하시는 마음과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도 우리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의 임재하심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며 거의 잊고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6:32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개인의 사정과 필요함을 일일이 다 아시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크고 위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데 우리가 왜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함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하 나님께로부터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오고 있다는 바를 아는 동시 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바를 더욱 더 민첩하게 의식하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다 알길 수 있는 사랑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또한 우리들의 모든 뼈저린 아픔과 난관과 우리들의 소원을 보시며 지 켜주시는 사랑의 눈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한숨과 탄식함과 불행과 불평을 모두 들으며 이해해 주시는 예민한 하나님의 이해의 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없이 풍파와 위기와 어려움 많은 세상을 감당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에 바로 응답해 주시며 또한 이해 해 주십니다. 딸만 아니라 우리들이 바로 생각하고 구하는 것 이상으로 더 흡족하게 도와주십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려운 때가 되자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에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발견하여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겸손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성령의 불로써 그 심중의 죄의 열매인 부정한 입술이 지 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성령의 불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성령 의 불세례는 자기의 부정한 죄를 씻고 불로 태워질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 답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이사야에 게 영적 향상과 영적 체험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불변하시며 보좌 위에서 의와 선과 사랑과 진리로 다스리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 에 응하는 사명자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은혜를 받고서도 사명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적인 이기주의자이며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둔 자와 같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들이 다 살해 당하는 중에도 모세를 살려주심은 그에게 특별히 출애굽의 인도자로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를 회개시키신 것은 복음의 중인의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쉬함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려뜨리고 뜨거운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 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즉각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함께 예배 드리는 저희들은 이 시대의 기도 역군으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사명주십니다. 이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곧 “나를 보내소서 내가 주님을 위하여 일어서겠습니다. 일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라는 응답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 추수할 일군이 적다고 하는 말씀에 주여 내가 일하겠나이다 라고 응답하시는 성도가 되시며, 기도의 사람 이사야가 바로 이 시대의 당신임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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