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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후 1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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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도는 지혜롭다 (1) 왜 지혜롭습니까 지혜의 영을 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대로 말하면, 성령에 충만케 되면 여러 가지 일에 섬세하고 지혜롭게 됩니다. 거듭날 때 지난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일은 모두 지나가고 이제부터는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새 생활은 이전의 생활보다 세밀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성경에 의하여 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과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므로 불신자가 생각도 못하는 부분까지 지혜롭게 행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솔로몬의 지혜 솔로몬은 원래 잘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새 성전을 낙성하고,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서 “네게 무엇을 줄꼬” 하자 그가 지혜의 성령을 구했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에게 지혜의 성령에 더하여 수와 부와 원수의 목숨까지 주어서 그가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리고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는 바로 이 지혜를 가지고 두 창기의 죽은 아이는 당신의 것이고 산 아이는 내 아이라고 싸우는 싸움을 잘 재판하여 시바 여왕을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결코 솔로몬이 위대하거나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잘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를 지혜롭게 해서 당신의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한 것 뿐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지혜를 받는다면 솔로몬 이상의 지혜로 주를 위해 이바지 할 수 있습니다(고전 2:10-11). (3) 성도로서는 멍청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몰라도 구원얻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식한 노인이라도 새벽마다 주의 말씀으로 교훈을 계속 받을 때 유식하고 형식적인 교인들보다도 더욱 지혜롭게 신령한 생활을 하며 놀라운 증거를 갖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구에서 목회할 때 임 집사님이 73세 때 불교에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결신 후 깨끗이 과거를 청산하고 아내와 함께 교회 나오기를 시작하여 교회에 음악종을 봉헌하고, 새벽마다 기도회에 참석하더니 심방시 성경의 진리에 대하여 잘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제직보다도 더 깊이 진리를 깨닫고 있는 것을 보고 감격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는 2년 후 서리 집사로 임명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혜롭고 진리에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2. 자화 자찬하는 자는 지혜인이 아닙니다 (1) 성도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 (잠 27:2) 하였습니다. 항간에 이 말씀에 어긋나게 행하는 자들이 횡행함은 정말 유감입니다. 특히 부흥사라는 사람들이 자화자찬하기를 계속하니 이런 자들에게는 교만으로 인한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집회 때마다 간증을 통하여 자기를 신격화하거나 절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영은 벌써 떠나고 만 것이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2) 남의 수고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 목회자가 부흥강사를 청했으면 마땅히 강사가 목회자의 도움이 되어야지 오히려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소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김 원서 목사는 말하기를 “부흥강사가 본 교회 목사에게 손해만 안 끼치면 집회인도를 잘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건방지게 하라는 성경 공부는 안 가르치고 엉뚱하게 본 교회 교역자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마땅히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 산상 집회라는 명목으로 남의 교인을 모아 놓고 기도원을 위해 헌금을 하라고 강요하고 무책임한 강설로 키워놓은 교인들의 신앙 체계를 자기들의 쥐꼬리만 한 체험으로 허물어뜨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에게서 은혜받지 못한 사람은 다 깔보는 것입니다. 정말 가소롭습니다. 남의 수고한 것을 가지고 우려먹거나 금품을 가로채는 자는 바로 거짓 교사, 거짓 선교사입니다. (3) 자기 자랑의 이유 주관적인 자가 스스로 자랑하며 남이 수고한 것을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평생에 자기 주관에만 사로잡혀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자들의 소행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9:27에서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자랑하는 자를 보거든 그가 바로 거짓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것 (1) 성도가 자랑할 수 있는 것. 본문의 말씀대로 성도의 자랑에는 한계가 있고, 또한 자랑할 분량이 있다고 한 바울의 말을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한계는 무엇이고, 분량은 무엇이겠습니까 한계란 자랑할 부분, 즉 줄거리를 말하며, 분량은 몇번인가 횟수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자랑하고 어떤 것은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몇번이나 자랑할까 하는 자랑의 횟수도 엄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무턱대고 자랑하거나 밤낮 자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야 자랑할 것이 내게 있지 아니하고 주님께 있고, 자기의 부족을 느껴야 은혜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랑해야(16-18)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중생, 회심하게 하고 이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랑은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구원얻은 성도가 말씀으로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이를 많은 사람에게 자랑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신앙 성장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자랑할 한계며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기억할 것이 인간의 의는 헌 누더기 옷과 같은 줄 알고 인간을 자랑치 말고(사 64:6), 은혜를 주신 주님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4:7). 주께서 칭찬할만한 자랑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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