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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대의 위인 (마 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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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위대한 사람이며 어떠한 사람이 제일 큰 인물이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영웅 호걸도 많고 성현 군자도 많으며 철인, 문인, 지혜자들도 많이 있어 나라를 세우고 민족을 살리기도 하고 세계를 움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역사상 많은 인물들 중에 그 누구도 칭찬하시지 않고 오직 사가랴의 아들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 이보다 더 큰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1. 자신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델피의 신전 벽에 쓰여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여 가로되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면서 요 3:30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반성하여 볼 때 예수님의 신을 들고 다니는 심부름꾼 노릇도 못할 무자격자임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유명한 철인이요, 유학자요, 정치가였던 왕 양명은 1592년, 광서 땅을 정복하고 산 속에 들어가 수양을 하고 수 년후 돌아올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러 나왔지만은 왕 양명은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가졌습니다. 친구 한 사람이 왕 양명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웬 까닭이냐고 묻자 왕 양명은 한숨을 지으며 “역파 산중적 난파 심중적”이라 했습니다. 이는 산 속에 있는 적은 능히 무찌를 수 있으나 마음 속의 적은 능히 무찌를 수가 없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도 역시 그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기특하게 여기신 주님께서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2. 자기의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선지자로써 사명을 맡겨 주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병은 (1)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요 (2) 사람들이 회개하고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세계에 전하기 위하여 파견받은 최초의 전권 대사로서 사명을 깨닫고 수행한 사람이기에 세례 요한은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자로 지어주셨기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만들어 주셨고 먹고 안 먹는 것은 사람의 뜻에 맡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로버트가 아니요 자유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도 자유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래야만 인간이 상실한 참 인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례를 정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사명을 올바로 깨달을 때는 1) 세상의 부귀영화를 원치 않는 자가 됩니다. 사명을 깨달은 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뜬구름으로 봅니다. 2) 지위, 권세, 명예를 원치 않는 자가 됩니다. 세례 요한은 천하를 떨게 하는 권세, 세상의 존경 대상이 되는 명예를 다 헌신짝처럼 버리고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엔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자기는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소리는 존재가 없습니다. 나는 존재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부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문벌과 인격, 사상, 웅변, 종교는 누구 못지 않게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 복음의 사명을 받은 후에는 이 육신의 모든 영화를 다 배설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쳐 일한 복음의 투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잘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3. 사명에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당시 분봉왕 헤롯이 비도덕적인 악을 행할 때 궁실에 들어가 헤롯왕에게 그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헤롯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충성은 자기의 사명을 위해 생명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 천자문에도 충직진명(忠直盡命)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충성할 때에는 1) 시간에 장난이 없고 역경에 동요가 없고 2) 생사에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충성할 때에는 자신의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부인으로 삼은 것을 공격한 것은 부도덕한 생활을 책망한 것으로 생명을 바치며 외친 권면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정의를 외친다는 사실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수십억 인간들은 모두가 생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에 없는 말도 하며 마음에 안맞는 일도 하며 숙여지지 않는 머리를 숙이고 비루한 짓을 하며 시비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생을 위하여 의를 굽히지 아니하고 의를 위해 생을 희생한 것입니다. 의를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의 죄를 책망하고 감옥에 갇히어 사형을 받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 바쳐 충성한 사람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세례 요한은 결코 승리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보면 억울한 패배자요, 지혜없는 도전자요 왕을 모독한 죄로 칼로 목이 베어져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세례 요한을 인간 중에서 가장 큰 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 하시면서 하늘 나라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4:2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1933넌 나치스의 히틀러가 집권하여 우회에서 연설하기를 ‘기독교는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종교다’ 라고 외쳐 교회의 지지를 얻게 하고 2주 후에 ‘독일은 교회를 부른다’고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용교회를 만들고 독일에 충성하지 않은 교인은 잡아 모두 투옥시켰던 것입니다. 그가 교회를 친 방법은 교회가 교회를 치게 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히틀러 정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당시도 그러하였고, 오늘날도 부정과 더불어 협작하고 정의와 진리에서 떠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무엇인가 우리의 충성된 점을 보시고 택하시고 불러 사명을 맡겨주셨으니 우리는 세례 요한같이 자신을 반성하여 내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가 잘 깨달아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적은 일에도 충성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을 받는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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