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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니느웨의 패배 (나 0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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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는 거민이 백만이나 되는 큰 성읍이었으나 다 피난하고 머문 자가 없습니다. 앗수르는 열국에서 탈취해온 금과 은이 많음으로 금 은으로 궁전을 꾸미며 보화로 궁전을을 채웠는데 이제 적군에게 약탈을 당하여 공허해지고 황무하여졌습니다. 그래서 거민이 낙담하며(사 13:7-8) 무릎이 서로 부딪치며(단 5:6) 허리가 아프고 얼굴이 변하게 되는 침상이 생기게 됩니다(렘 30:6, 욜 2:2).

1. 못 같은 영화(8절) (1) 못이란 물이 모여 이루어집니다.이 점에서 못은 샘과 다릅니다. 샘은 그 안에서 솟아오르는 무롤 채워지는데 반하여 못은 사방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객수가 모이고 모여 만수를 이룹니다. 니느웨가 만수를 이룬 못과 같다고 비유한 것은 물론 니느웨의 풍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풍요만을 뜻하는 비유는 아닙니다. 그것이 열국으로부터 약탈해 온 재물로 인한 풍요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풍요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적인 자원도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여 들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에는 열국으로부터 갈취한 재물이 산적해감과 동시에 사방으로부터 모여드는 사람들로 성시(盛市)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니느웨는 황금시대를 살고 있었으며, 그래서 니느웨는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긴 만수를 이룬 댐처럼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으로 팽창해 있었으니 자만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 풍요가 안에서 용출한 생수가 아니라 밖에서 탈취해들인 객수라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여 했었습니다. (2) 못물은 빠져나갈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아니 처음부터 빼져 나가기 위해 모인 물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수를 이룬 못물의 풍요에 너무 자고해 할 것은 없습니다. 만일 수문이라도 열리는 날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갈 물이기 때문입니다. 수문을 열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방축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타력에 의해 방축이 무너지면 수문이 열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물은 빠져 나가고 삽시간에 보기 흉한 진흙바닥만 드러나는 것입니다.이것이 니느웨의 운명입니다. 즉 부당한 방법으로 축제한 영화의 말로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가슴을 치며 발을 굴러도 효과는 없습니다. 멈춰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터져나가는 못물이 멈춰줄 리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3) 그러므로 못물보다 샘이 되는 것이 현명합니다.객수를 탐하지 않으니 과욕에 빠지지 않아 좋고 부오기될 위험서잉 없으니 안전해서 좋고 언제나 다함이 없이 항심(恒心)을 지닐 수 있으니 좋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샘물보다 못이 되려고 합니다. 1) 첫째 못은 규모가 샘물보다 크니 양이 찹니다. 2) 둘째 표면에 나타나니 좋고 3) 셋째 유원지가 될 수 있으니 명승지로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못이 되려고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웅덩이를 채워 만수를 이루려 하고 웅덩이를 채운 자들은 만수의 포복감에 도취되기를 좋아합니다.

2. 공허(10절)다른 사람을 공허하게 한 자는 자기도 공허해집니다. 이것이 역사적 진리입니다. 앗수르는 인근 나라들을 공허하게 했으니 필경 자기도 공허하고 황무하게 될 것을 선지자 나훔을 통하여 경고받은 것입니다. 과연 예언한지 100년 후에 니느웨는 공허해졌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전도자는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어 해아래 있는 것 가운데 헛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오직 여호와를 경외할 것뿐이라”고 공허의 탄식을 끝맺혔습니다. (1) 세계 열강 역사의 공허고대로부터 오늘까지 동서양 열강들의 역사를 상고해 보면 참으로 공허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동양의 고대 문명은 중국이였으니 요, 순, 우, 탕의 선대를 지나 하, 상, 주의 시대와 춘추전국시대에는 벌써 전시대인 요, 순, 성대가 꿈으로 생각되어지고 진나라가 통일하여 만리장성을 쌓을 때에 그 세력이 충전하였으나 불과 3세에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의 천하를 다투는 전쟁터로 화해졌습니다. 서한시대 한무제의 승로반도 꿈이었고 왕망의 찬위로 서한도 넘어졌습니다. 동한을 지나 삼국시대에 이르고 보면 관공, 조조, 손귀 등 세 호걸의 싸움에서 용사 관공도 전사하고 천하의 모사 제갈양도 오장원에서 그 묘책이 다하니 세상만사는 뜬 구름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사마염이 통일하고 진무제가 되었으나 불과 수대에 골육상쟁으로 엉뚱한 호적에게 빼앗기고 보니 어부지리로 기세를 울리던 사마시는 그 자취를 감추고, 남북조의 호적이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조의 호적도 잠깐이요 수의 양제가 일어나서 한 때는 고구려까지 침략하였으나 을지문덕에게 패하여 청천강에 수장되고, 그 후 당나라가 일어나 천하를 호령하며 문화를 크게 빛내었으나 300년도 못되어 반역자에 의해 당의 세력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양, 단, 진, 한, 주 5대를 통하여 천하는 크게 혼란되었다가 송나라의 조광율이 일어나 천하를 통일하고 태조가 되니 한 때는 그 세력이 단단하며 당, 송의 문화가 세계에 찬란했으나 천하의 영웅 징기스칸의 위세가 세계를 휩쓸 때 송의 부강도 문화도 그 바람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호족영웅 위필열의 득세도 100년 미만의 삽시간이었고 당시 명나라의 주원장이 천하를 얻어 태조가 되어 한족의 천하회복 자랑하였으나 300년 미만에 북방민족인 해천각라의 누루하치에게 천하를 빼앗기고 보니 한족의 한숨은 곧 불신을 이루고 눈물은 양자 강물을 보태였던 것입니다. 명나라를 탈취하여 공허하게 만든 누루하치도 불과 2대에 선통제 때에 와서 원세개에게 퇴위당하고 북경의 천자위의 보좌를 내어 놓게 되니 대청시대 297년도 아침 안개 같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이것이 강국의 역사요, 인간의 생활입니다. 역사는 동서양과 대소국의 차이와 사정의 이변은 다소 있을망정 그 과정은 모두 대동소이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만사 허공 아닙니까 (2) 예수의 경험이 공허합니다.전도자 솔로몬의 경험을 빌려 말하면 인간생활 전부가 허무합니다. 1) 학문은 인간의 지상이 못됩니다.현대인은 지식만능을 표방하고 전력을 여기에 기울이며 천하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찾아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 1:8에 “그러나 그 결과가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본 귀로 듣기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전 1:18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함도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또 더 한다”고 했습니다.우주와 인생을 알면 알수록 회의와 비탄이 심합니다. 그래서 독일인은 이것을 우주탄이라고 했습니다. 뉴턴이 그러했고 괴테가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학자들의 독특한 비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무학이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이 결코 인간의 지상선은 못되는 것입니다. 2) 쾌락에도 만족은 없습니다.솔로몬은 지혜에도 비탄이 있음을 알고 쾌락에서 만족을 구해 보았습니다. 눈에 원하는 바름 금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즐거워하는 바를 막지 아니하여 음주하며 축첩하며 방탕 오락을 마음대로 하여 보았으나 그 결과도 바람잡는 것 같이 공허했습니다. 솔로몬이 쾌락 추구에서 얻은 큰 교훈은 광망과 우치라 했습니다. 3) 부귀에도 만족은 없습니다.가난한 자가 부자를 바라볼 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이나 부귀한 자 자신은 만족을 모르는 수가 허다합니다. 어떤 귀부인은 거지 부부가 여름철 나무 그늘아래서 찬밥 한 덩이를 웃으며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솔로몬 자신은 고금을 통해 비할 수 없는 부와 귀를 가졌으나 만족이 없다고 했습니다. 니느웨성도 그 부귀와 영화가 찬란했으나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고 고고학자들이 부서진 토기조각을 캐내는 발굴지가 되었을 뿐입니다. (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 지상선입니다.오늘 우리의 지상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말씀이시오, 창조주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음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덕으로 충만케 하신 분이십니다(골 2장). 그가 없이는 지식도 쾌락도 부도 없습니다. 그가 없이는 영생도 영광도 없습니다. 그는 이새의 뿌리에서 난 다윗의 후예로 의의 태양이시오 새벽별이신 인생의 지상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있은 후에 만족도 행복도 있고 예수 있은 후에야 지식, 쾌락, 부자가 만족이요,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실재요 충만이요, 완성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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