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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닭이 우는 소리와 베드로의 비극 (눅 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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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주님께서 목요일날 밤 감람산에서 수제자 베드로가 믿음이 약하여 배신할 것을 미리 아시고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시며 베드로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1. 닭소리와 베드로 (1) 닭소리를 듣기 전에 베드로는 사탄의 유혹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31절에 보면 주님은 “베드로를 밀까부르듯 사탄이 너를 시험할 것이니 까불리어 날라가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주님은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시대적인 징조를 분간하지 못한 닭소리 없는 신자에게는 베드로와 같이 사탄의 역사로 쉴새없이 까불릴 것입니다. 또한 말씀 중심, 영력 중심, 깨어 기도없는 교회를 사단은 언제나 까불릴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베드로에 대한 경고대로 사탄의 까불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충성스러웠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은 했으나 그래도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이런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회개의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죽으면 모든 제자들이 나를 버리고 다 도망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과신하여 “주여 다 도망갈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리들에게 끌려가는 주님을 따라 대재사장의 뜰 안까지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요 18:15). 그러나 담력이 있는 자는 평범한 사람보다 더 위험한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고 슬픔에 잠기어서 바라보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과격한 말로 꾸짖었다면 베드로는 참고 견딜 수 있었겠지만 말없이 슬픔에 잠긴 눈초리는 칼과 같이 베드로의 폐부를 꿰뚫었으며 급기야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입니다. (3)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권면하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굳세게 한다는 말은 가만히 앉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능력과 행위로 형제를 굳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권면을 주님께서는 해주셨으나 닭소리를 듣지 못했던 베드로는 주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닭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대의 닭소리는 뜻있는 성도들에게는 세미하게 들립니다. 사탄의 유혹에 까불리지 않기 위하여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사업, 가정에 들어와 까불리기 시작합니다. 닭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32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의 징조를 분간하지 못하는 신자는 믿음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 갇히고 죽기까지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떨어질 때 주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베드로처럼 주님을 배신하고 저주하는 자리에까지 떨어집니다. 가룟 유다도 믿음이 떨어질 때 주님께 거짓 입맞춤을 하게 되고 주님을 파는 자리에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타락합니다. 주정뱅이, 횡령, 사기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신하는 거리로 왜 떨어졌겠습니까 그 원인은 예언의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믿음이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과 시대의 징조를 듣고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5)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베드로는 주님을 멀찌기 따라갔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앞에 서야 될 사람이 멀리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믿음이 떨어지면 멀찌감치 주님을 따르기 마련입니다. 베드로는 앞서 따르자니 주님과 함께 죽겠고 도망가자니 체면이 서지 알아서 그저 마지못해 신앙으로 멀찌기 뒤따라가는 신 앙이었습니다. 말세에 사는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우리는 앞을 다투어 십자가의 좁은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 3:14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일이나, 주님을 믿는 일에 남보다 앞장서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이나, 주일을 지키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이나, 헌금하는 일에도 정성을 모아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6) 닭의 울음소리가 없는 자리에 베드로는 악당들과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원수들이 주님을 잡아서 재판석에 넘겨 주고 바깥 뜰에 불을 피우고 앉아 있는 그 자리에 베드로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악당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아니 했더라면 실수는 덜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던 장본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 1:1에서 “복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앉을 자리에 앉고 서야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서야 할 자리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신하를 죽이고 신하의 부인 밧세바와 행해서는 안될 범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교제할 자를 교제하고, 서야 할 자리에 서고, 앉을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2. 닭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의 베드로 눅 22:60에 “닭이 곧 울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슬피 통곡했던 것입니다. 이 닭소리는 베드로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이 사는 유일한 기회요 대사도가 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닭소리를 듣고 곧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신앙을 찾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닭소리를 듣고도 회개치 않아 멸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예언의 닭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의 혼란한 정세는 오늘의 교회를 향해 회개를 촉진하는 닭의 울음소리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마 24장에 “나라가 일어나서 나라를 치고 백성을 치리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며 불법이 성함으로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말세에 일어날 징조를 주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오늘의 이 시대는 말세의 때입니다. 우리는 닭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같이 깊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눅 22:61에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보시는 주님의 눈에는 긍휼이, 빛나는 사랑의 눈빛이 있었습니다. 천길 만길 떨어진 베드로의 초라한 모습은 주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측은히 여겨졌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심정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리하여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눅 22:62에「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울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적마다 자신의 죄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회개하는 눈물이 제일 귀한 눈물입니다. 우리는 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예언의 말씀과 시대의 징조를 보아 실족함이 없이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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