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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의 번제 (레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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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는 우리의 헌신된 마음을 하나님께 제사의 형태로 나타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헌신된 마음은 최상의 것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합니다. 어떤이 에게는 소가 최상의 제물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양이나 염소가 최상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사정이 여의치 않는 사람은 비둘기 새끼로 최상의 제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드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내어 놓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는 참된 제사를 드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막 12:41-44에 보면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가 칭찬을 받는 일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헌금하였으나 예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지만 두 렙돈만을 넣은 과부가 칭찬 받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것은 과부의 헌금은 과부의 전체 생활비였지만 부자의 헌금은 많은 것 중에서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많은 양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을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소의 번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헌신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자 합니다.

1. 바칠 짐승은 수컷이되 흠이 없어야 합니다 제사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드려지는 제물은 가장 순전하고 흠이 없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무흠한 것, 수컷이라는 말은 제물의 완전성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동물 자체는 무흠하고 순결한 제물,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우리의 완전한 제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 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악과 흠이 없고 죄악들과 구별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제물이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 니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 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 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졌음이니라”(히 7:26-27). 이렇게 완전한 제물이 아니면 우리의 제사는 열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헌신이나 기도. 봉사 이 모든 것은 무흠하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그것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2. 자발적인 마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예물이라도 억지로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신앙의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는 바로 이런 마음을 원하십니다. 아무리 귀한 제물과 화려한 의식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위선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위선의 죄에 대해 경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눅 11:42)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회막문에서 드려야 합니다 번제를 위한 놋제단이 회막문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번제물은 이 제단 에서 거룩하게 되어집니다. 만일 제물이 다른 곳에서 드려진다면 그 재물은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드리는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단에서 축사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헌신이 좋은 것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피해서는 이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선행도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헌신 위에 뿌러질 때 그 헌신이 가치가 있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 우리의 재물, 우리의 시간 등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야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까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3)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전 영역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함니다 제사 과정에서 제물의 머리에l 안수함은 다음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자신의 모든 권한을 짐승에게 이양함 (2) 자신은 죽어야 할 자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마땅히 죽어야 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은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고 살고 있음. (3) 그 제사는 자신의 죄를 대속하는 것임 안수가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제물을 가져오는 자는 그 제물 에 안수하면서 “그리하면 하나님께 열납되어 속죄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가져오는 자는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마음” 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죄를 통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5. 그 제물은 여호와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모든 육정이 살아있는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물이 된 짐승은 철저하게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들은 옛 사람의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육체의 부패된 정욕과 동물적인 삶 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만이 천국 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육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제물은 제사장의 손에 죽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 에서 온전한 죽음을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신을 온전히 죽일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 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런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6. 제물을 불살라야 합니다 제물이 불에 타는 것은 재물의 온전한 헌신, 어떠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는 그러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이러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 을 하나님께 드리되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드렸습니다. 십자가라는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는 털을 깍이우는 양같이 그저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릴 때 예수님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던 것입니다.”(레 1:9) 기독교인의 삶도 이런 예수님의 삶을 본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바친 그리스도의 제사가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듯이 우리 기독교인들도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벧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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