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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궤의 축복 (삼하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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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신앙의 선조들이 인생의 왕야를 지나는 동안 언약궤를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언약궤는 일명 법궤 또는 여호와의 궤, 또는 증거궤, 하나님의 궤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여호수아가 언약궤를 가지고 요단강을 건넌 일이 있었으며(수3:3-6), 다윗은 언약궤를 가지고서 예루살렘 도습으로 갔으며(삼하 6:12-15), 솔로몬 왕은 7년간의 성전 건축을 마치고 먼저 언약궤를 가지고 성전 안에 들어갔으며(왕상 8:1), 모세도 황야의 길에 언약궤를 가지고 지내왔으며(민 1:50-54), 이스라엘 백성들이 굳게 닫힌 여리고성을 언약궤를 가지고 전진할 때에 무너졌으며(수 6:4-11), 오벧에돔이 언약궤를 가정에 잘 모시고 있었으므로 축복을 받았으며(삼하 6:10-11), 이스라엘 군대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출전함으로 전쟁을 승리로 인도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삼상 4:3). 이 언약궤는 모세시대 때부터 시작되어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에도있었는데 그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란시대에 잘 감추어 보관하였던 것을 B C. 587년에 느브갓네살 왕에게 빼앗겨서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렘 3:16). 언약궤는 이 후에 율법서(창, 출, 레, 민, 신) 다섯 권과 기타 성경을 넣은 성궤로 안장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과 헤롯의 성전에도 이런 율법궤로써 대치하였습니다.

1. 언약궤의 구조 언약궤는 넓이가 50센티미터, 길이가 120센티미터, 높이가 50센티미터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일곱 가지의 특수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조각 나무로 궤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의미하는 나무로써 조각 나무는 우리나라의 아카시아의 가시나무 종류입니다. 가시나무 같은 우리들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출 25:10). (2) 금으로 궤를 씌웠다는 것입니다. 금은 우리의 변치 않는 믿음, 신앙을 가리키는 깊은 뜻입니다(히 9:4, 벧전 1:7). (3) 네 귀에 금고리를 달아 메는 채를 만들었으니 라고 했는데 이것은 협동정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사방에서 똑같은 힘과 똑같은 발걸음, 똑같은 정신으로 함께 협동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출 25:12-14, 전 4:9-11). (4) 속죄소 위에는 두 개의 “그룹”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천사로서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천사가 우리를 항상 보호하시고 안아주시고 감싸 주시는 것입니다(출 25:18). (5) 그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었는데 현재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씀 중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즉 만나는 말씀 중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출 16:3

1. 요 6:48). (6) 싹 난 지팡이가 그 궤 속에 있었으니 이것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 권능에 있는 것입니다. 싹 난 지팡이는 능력 충만입니다(민 17:18). (7) 돌비석에 새긴 십계명이 궤 속에 있었으니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것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헌법이며 천법입니다(고후 3:3, 출 32:15). 십계명은 동양, 서양 고금을 초월한 헌법으로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지키는 자마다 선행 충만이 될 것입니다. 즉 십계명은 선행 충만, 구원 충만의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곱 가지의 특별한 뜻이 있으니 완전한 것입니다.

2. 다윗은 법궤를 새 수레로 운반하려 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오려 했습니다. 여기에서도 그의 하나님 제일주의가 나타납니다. 그가 법제를 옮겨올 생각을 한 것은 사울과 달라서 믿음을 가진 증표입니다. 대상 13장에 기록된 같은 사건을 살펴보면 그는 폭국의 원리와 달리 군사관계의 지도자들과 일반 민중의 의견을 알아보며, 또 특별히 최후 결론을 하나님의 뜻대로 내리기 위해 “하나님 여호와께 말미암았으면”이라고 말하였습니다(대상 13:2). 바알레유다란 지명은 기럇여아림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이름입니다(삼상 7:1-2). 메어 오려 하니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은 어깨에 멘다는 뜻이 아닙니다. 2절에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법궤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룹들 사이에” 계신다고 하는 것은 성막의 시온소에 계시는(출 25:17-22) 하나님을 의미하는지, 혹은 엄위롭게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시 18:10)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궤로써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그가 진정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법궤는 땅에 있었으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그 백성을 지도하셨습니다(출 25:21-22). 다윗이 이같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여 열심을 낸 것은 좋았으나 운반 하는 일을 블레셋 사람들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삼상 6:7-12). 율법에 의하면 법궤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제정되었습니다(민 4:15).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어깨에 메지 않고 수레에 운반했어도 징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법궤 운반에 있어서 율법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다윗의 계획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웃사의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3. 언약궤 취급법 (1) 귀중하게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모세, 솔로몬, 그리고 오벧에돔의 가정에서는 언약궤를 귀중하게 어깨에 메어서 운반하였습니다. 그러나 웃사와 아효는 법궤를 우마차에 싣고서 다녔고, 경솔하게 손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징벌을 받아 죽었던 것 입니다. 언약궤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서 운반하게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군병들이 언약궤를 잘 모시지 못하였으므로 3만 명의 군사들이 전몰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법궤는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수 4:10). (2)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언약궤를 이동할 때는 먼저 제물을 드려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솔로몬”도 언약궤를 옮겨 올 때 제물을 드렸으며(왕상 8:5). 다윗도 예루살렘으로 옳기기 전에 제물을 드려 제단을 쌓았습니다(삼하 6:13). (3) 부정한 눈과 손으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벧세메스의 사람들이 부정한 눈과 손으로 언약궤를 들여다보았을 때 형벌을 받아 즉사하였는데 70명, 혹 2만 70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삼상 6:19-21). 우리는 손과 눈에 할례를 받아 새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현대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언약궤, 능력의 언약궤, 성령의 언약궤를 잘 간직하고 소유해서 축복과 영광을 받으시는 인생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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