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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를 위한 투쟁 (출 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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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80년의 준비기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해방자로서의 자격을 다져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비로소 애굽에 이른 모세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첫 번째의 쟁론을 시도하였습니다. 즉 자유를 위한 투쟁을 단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왕은 모세의 정당한 요구에 마치 저 애굽 평원에 치솟는 거대한 피마밑의 위요, 마냥 기고만장한 자세로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1. 자유의 투사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고 했습니다.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바로의 기질과 잔인성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자의 굴에서 사자의 턱수염을 잡아당긴다는 위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이미 약속하셨고(출 3:12), 그 길은 애굽에서 삼일 길이 더 된다고 말씀하셨고(출 12:37),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리라고 약속한(출 3:8) 사실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은 모든 두려움을 제거합니다. 이러한 시련이 와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에게 요구한 내용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목적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종교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적은 땅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임을 우리는 여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부수적이요 도움을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유일한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할 일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순종의 기회를 주시고 책임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그에게 말씀하셨으나 바로 왕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절한 것입니다. 출 5:2에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바로의 거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에게 축복이 될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절하므로 그는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 마는 불행을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의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2. 압제자의 횡포

바로는 “하나님이 누구관대 내가 하나님의 말을 들으랴”고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의 야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말하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한갖 허황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간주합니다. 오늘도 역시 바로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황금은 힘이다” 라는 깃발을 내걸고 애굽으로 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의 물질 지상주의는 교회 내부에까지 파고 들어 진리의 사역 자들이 황금주의의 깃발 아래 무시당하고 있으며 몇 푼의 돈으로 진리의 사역자들을 농락하는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의 증인들을 멸시하는 현대의 바로들은 마땅히 주의 이름으로 규탄 받음이 당연함을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자유를 저해하는 자들

모세와 아론의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한 요청은 바로의 마음을 더욱 강팍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노동을 더욱 가증케 만드는 결과를 초래케 하였습니다. 바로는 패장들에게 벽돌제조의 필요한 짚을 주지 말고 전에 생산량대로 벽돌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에 나가 짚을 주어다가 전과 동일한 양의 벽돌을 구우려고 하니 전보다 몇배나 더 큰 엄무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왕의 비상조치 때문에 간역자들은 자기들에게 임할 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의 패장들을 때리며 책임량 완수를 위한 독촉을 가하게끔 되었습니다. 패장들 역시 견디다 못해 바로 왕을 찾아가 사정을 해 보았으나 바로 왕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경건한 일에 대한 신자들의 노력은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서 세상 일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받는 번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한 것은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게 해 달라는 것 뿐인데 그 때문에 노동은 가중되고 패장은 매를 맞게 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자유론 찾아 누리기까지는 무수한 난관을 극복치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패장들이 바로의 가중되는 노동의 고통을 들으면서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바로를 떠나 나올 때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라고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마음은 매우 아팠습니다. 그들은 그들 때문에 더욱 이스라엘이 고통을 받게 된 사실이 마음에 상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 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모세가 시련을 받을 여호와께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는 항상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기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나님께 원망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도 주의 일하다가 견디기 어려운 십자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이런 죄를 종종 범하기 쉽습니다. 이는 땅에 있는 벌레가 전능자에게 논쟁하는 것보다 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시기를 늦추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자연현상을 보더라도 언제나 새벽을 바라보는 밤 3-4시가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그 고비만 넘기기만 하면 샛별이 뜨고 희망의 태양이 떠오름으로 여명의 아침이 오기 마련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이 순간이야말로 인내가 요구되는 시기였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자유와 해방의 날이 올터인데 그는 해방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와 같이 하나님의 메세지를 거절해서도 안되지만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여서도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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