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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신관 (마 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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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신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신관은 곧 성경의 신관인 것을 미리 아시기 바랍니다. 먼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신관부터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선민이요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사이에는 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세의 신관이 특히 현저합니다. 십계명은 계약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이 양심적으로 이를 지키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멸망할 것을 선번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출발하여 가나안에 입주하는 동안 이교 문화와 접하고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의 신과 이밖의 많은 우상 숭배와 접하고 향락생활의 유혹도 받았으나 마침내 여호와에 대한 정조를 지키고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은 오로지 계약 신앙을 가진 까닭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신관은 계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나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구함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으시고 죄를 사유하시는 은총의 경험이 예언자의 신앙적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이 인식하고 경험한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고 은혜롭고 속죄적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만 정조를 바치라고 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잘못하여 죄를 지었어도 회개만 하면 어디까지나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신관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심판의 신이었습니다. 요컨대 예언자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원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신약 성경의 신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예수의 신관부터 찾아보면 본문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 중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절대성과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신 첫 말씀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마 6:9)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은 죄악된 인류를 위하여 마음 아파 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양과 목자의 비유와, 탕자와 그 부친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함에는 천하 만물에 대하여 아버지다운 심정을 가지신 연유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공중의 새까지도 먹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무엇이나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고로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랑만 하시는 거룩하시고 달콤한 하나님만은 아니십니다. 악과 불의에 대하여 냉정하셨으며 거룩하신 뜻에 거역하는 자를 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사도들의 신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사도들은 주 예수의 인격에서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과 하늘의 아버지이심을 인식하고 체험하였습니다. 고후 1:3에 사도 바울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이 사실을 잘 대변해 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진실로 독자이신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는 아버지되신 하나님 자신을 본 것입니다. 아들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결코 인식하거나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가진 확신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역사 중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서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요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역사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진리가 명확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창조 때부터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같이 계시던 독생자예수님이 역사 중에 일어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빌 2:7-8절에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 “하나님은 죽었다” 고 강연하며 인기가 대단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교인을 신앙적으로 성숙해야 하고 하나님 없어도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 53: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M. 루터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면서 그대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로 구속받고 성령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경험할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죄에는 그 독생자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죄많은 이 세상에 보내 주심으로 밝히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이 증거하고 양심이 증거하고 선지자들이 들은 음성이 증거하고 성경이 증거하고, 예수님이 증거하고, 성령이 증거하고, 체험이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인의 구속의 제물로 내어 주심으로 최고의 성애(聖愛)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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