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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수의 강 (계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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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 위치는 새 예루살렘 성에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비손강과 기혼강과 힛데겔강과 유브라데강이 흘러서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윤택케 했는데 새 예루살렘 성에는 생명수의 강이 흘러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소생케 합니다.

1. 생명수 강 1절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자로부터 나서.” 강물이라고 해서 다 맑거나 다 흐린 것은 아닙니다. 청류도 있고 탁류도 있습니다. 이 생명수의 강은 탁류가 아니라 맑은 물인데 수정과 같이 맑은 것이라 하여 최선의 맑은 것을 말합니다. 이 강물이 수정처럼 맑으니 더러운 것이 없다는 말이요 불결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강, 낙동강, 금호강이 맑다 해도 오염되어 저수지에서 걸러 내지 않거나 소독하지 않으면 대장균이 많기 때문에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수는 매우 깨끗하고 맑고 맑아서 구원받은 성도의 생명을 윤택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생명수의 발원지는 어떤 산상봉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진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압록강. 두만강은 백두산의 천지 못으로부터 내려옵니다. 낙동강은 청송 주왕산의 낙수터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에 있는 생명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렀으니 과연 생명수 강입니다.

2. 강가에 풍성한 생명 나무가 있으니 2절에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 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는 이 말은 마시기 편하고 풍성하여 누구든지 쉽게 마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이 귀한 중동 지방 사람이 이 말씀을 읽을 때에는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덴에 있는 강물은 온 지면에 둘렀는데 이것은 그 땅의 소산물을 윤택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길 가운데 흐르는 물은 범람하면 수재를 가져오는 무서운 물이기도 하나, 여기 물은 생명수이기 때문에 풍성하고 위엄이 있는 생명을 주는 물입니다. 생명수는 길가에 흘러 생명을 윤택케 합니다. 렘 2: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 잠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 잠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잠 16: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로 우리 자신 속에 흐르게 하면 어떠한 비극도 기쁨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며 더러운 곳에서도 장미를 피게 할 수 있습니다. 강 좌우편에 있는 열 두 가지의 생명 나무는 열매를 맺되 달마다 맺고 잎사귀는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찌기 에스겔은 겔 47:12에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 라”고 했습니다. 잎사귀는 만유의 상한 심령을 치료케 합니다. 열 두 가지의 열매가 다달이 맺히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매달의 양식을 상징하며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곧 생명수나 생명 나무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본문의 생명 나무는 에덴에 있던 생명 나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나무는 생명을 주는 나무요, 에덴에 생명 나무가 있었던 것처럼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나무는 구원된 무리에게 주어 영생하게 할 나무를 의미하며, 그리고 나는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상징한 말이기도 합니다. 무한한 생명수 강가에 사시(四時)로 맺는 풍성한 열매는 무한한 양식을 제공하며 사시로 푸른 잎은 무한한 세계를 항상 신선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3. 새 예루살렘 성의 복된 생활 (1) 저주가 없는 곳 3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하나님의 성은 저주가 없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즉 성도의 생활을 좌절시키고 방해하고 해치는 퇴폐와 악한 영향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 28:15-2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네 소생... 소산...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치시리니...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형통치 못하며... ” 등 많은 저주가 응하리라 했습니다. 이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불순종한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저주가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가 있었으나 새 예루살렘 성은 저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니 오직 의의 세계요 평화의 세계요 사탄이 없는 세계이니 다시 저주받을 일이 없습니다. 저주받은 인간은 이곳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2)봉 사 3절 하단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종이라는 말은 잔유가 없이 몸과 마음 모든 것이 노예가 되어 일한다는 뜻이고. 섬긴다는 말은 봉사한다 는 말씀입니다.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는 말은 온 성도들이 힘을 다해 일하며 이바지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일없이 노는 유흥장이 아닙니다. 저주와 고생은 없으나 기쁨으로 봉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힘써 일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즐거운 것은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힘들지 않고 일을 하면 할수록 만곡하고 즐거우며 의의가 있습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백성들은 천국을 노는 곳으로 생각하며. 일부다처주의 인 아랍계 나라 백성들은 천국을 아름다운 여자가 많이 있는 곳으로 생각하며, 인도 같은 나라는 극락을 누워서 잠자는 곳이 극락이라 연상합니다. 그러나 실로 하나님 나라는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4.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라 고전 13:12에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본문 4-5절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하늘 나라가 기쁘고 즐거운 것은 하나님 나라에 생명의 시내가 흐르고 만화가 만발한 것도 좋고 아름답겠으나 우리 주님 얼굴을 대하니 더 즐겁고 반가운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 중 영광, 기쁨 중의 기쁨은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히 그의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우리 이마에 가지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것인 동시에 주님이 또한 영원한 우리의 것이라는 표입니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속죄를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니이체는 “기독교는 가장 독하고 누르는 것만 가르치고 너무 약한 종교로 인류에게 영원한 오점의 하나”라 했으나, 러셀은 공연히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인간을 기만하는 예수를 사기꾼이라고 혹평했으나 죄와 사탄에게 기만된 자들의 말입니다. 미래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의 말이기 때문에 참된 말씀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거룩한 성의 환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통치하리라는 약속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종말에 있어서 하나님을 봉사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완전한 자유를 찾고 그에 대한 완전한 복종에서 진정한 권위를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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