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음란한 죄에 대한 경계 (잠 06:20-35)

첨부 1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길잡이를 삼도록 하라 20-23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메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도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 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생활 분야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말씀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엡 6:7에 보면 살아 움직이는 검이요, 벧전 2:2에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 히 4;2에 보면 해부하는 진리의 칼인 동시에 말씀으로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임할 때에 생명으로 임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계 10:3의 말씀처럼 우뢰소리로 큰 소리를 외치는 것처럼 역사하시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고요하게 역사하면서도 그 마음과 혼가 골수를 녹이는 것 같은 감화력이 있으며(살전 1:5), 렘 20:9에는 예레미야에게서는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불붙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성취를 통하여서 생명의 역사를 이룹니다. 23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눈에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불이요 우리 발에게 지시해 주는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우리 안내자가 될 것이며, 우리는 그 지시대로 따라갈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반려자가 될 것 이며 즐거운 명상을 하여 기쁘게 해 줄 것입니다. 당신이 새벽에 깨어서 하루 일과를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일에 대해 당신과 더불어 말할 것이며 최선의 생각을 해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에는 우리는 주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과실을 지적해 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하게 행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여 죽음에서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음란한 죄에 대한 경고 24-26절에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서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흘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여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법을 주시면서 의도하신 한 가지 큰 친절은 사람들을 이 죄에서 보호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악한 계집은 사랑하는 척 하지만 그 혀로써 파멸에 빠지게 합니다. 따라서 음녀의 덫을 피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을 죄에서 벗어지게 하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2) 25절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네 마음으로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은 곧 이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며 이 죄를 극도의 공포심과 혐오감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색을 탐한다면 이미 마음으로 간음했기 때문입니다. 얼굴의 매력이 나 요염한 시선에 매혹되는 것은 전부가 덫이요 그물이라 했습니다. 솔로몬은 여기 음행에 대한 죄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경험한 바로, 자신을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3)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여”라고 했습니다. 색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거나 영혼과 몸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눅 15장에 있는 탕자는 자신의 생계를 창기에게 소비했던 관계로 돼지의 쥐염을 먹는 생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4) “무릇 음녀를 먼지가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7-29절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불을 품에 품거나 뜨거운 숯불을 밟고 있는 사람은 불에 델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음행을 하는 자는 범죄의 자리에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나비는 불꽃을 보고 날아들다가 어리석게도 자기 목숨을 잃습니다. 간음을 범하는 자는 멸망으로 가는 대로에 있는 것입니다. 주제 넘는 죄인은 그 무서운 형벌을 알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죄를 다시 한번 범해 보겠다 그리고 형벌을 피해 보리라 그러면 무사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말은 “내가 불을 내 가슴에 품고도 내옷을 태우지 않겠으며 내가 뜨거운 숯불을 밟아도 내 발은 데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는 자신이야 무엇이라 변명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그의 욕정과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5) 30-33절에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할 것이나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여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1) 절도의 죄는 굶주림에서 생겨나는데 굶주림은 두꺼운 돌벽이라도 뚫게 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배고파 절도하면 멸시는 받지 않으나 변명할 말이 없어 칠 배를 보상하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에 출 22:1에 양 한 마리를 훔쳤으면 네 배를, 소 한 마리 훔쳤으면 소 다섯 마리를 보상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갚을 수 없으면 그의 아내를 종으로 팔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음을 범하는 것은 한층 더 흉악한 죄입니다. 다윗이 간음에 대해 나단이 지적할 때 삼하 12장에서 아주 악한 강도질에 대해 우화를 들었습니다. 다윗도 그 강도는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중인 죄인 것입니다. 2) 간음은 변명할 수 없는 치욕입니다. 짐승 같은 욕망으로 산 자신임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인간의 참된 모습을 손상시켰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에게 엄중한 벌을 받아야 할 죄입니다. 낙인찍힌 범죄입니다. 도둑은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훔치지만 간음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멸망시키며 양심을 손상시키고 이성을 부패케 만들고 영적 모든 불꽃을 버리고 자신을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속에 떨어뜨리는 짓입니다. 34-35절에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웃의 아내를 친숙하면 그 여자의 남편이 질투를 내게 하는데 하물며 그녀를 범했다면 아내의 간통으로 피해를 입은 남편을 만나는 것보다 차라리 새끼를 빼앗긴 암곰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이는 뇌물로도 해결키 어려운 것입니다. 남의 아내를 간음하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이니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결을 지켜 주님 오시는 날까지 티 없고 흠 없이 보존하는 정결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