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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흙이니 (창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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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얼른 생각하면 사람에게는 영혼이 없고 흙인고로 죽어서 진토가 될 뿐이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육신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입은 생활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기회로써 필경 그것만이 영원한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요 9:4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일도 끝이 나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아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곧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여 범죄한 육신을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볼 수 있습니다.

 1. 흙으로 돌아가는 의미

 (1) 육신의 탄식을 벗는 때입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년 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수의 자랑은 슬픈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으나 그 결론은 시편 90편이었습니다. 영웅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오대양의 가득 찬 물은 생의 눈물이며 6대 주에 불어오는 바람은 인생의 탄식 소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죽음은 인생의 의 탄식을 벗는 때입니다. (2) 짐을 벗는 때이며 썩지 않는 폼을 입는 때입니다. 범죄한 인생은 고달픕니다. 많은 짐을 지고 허덕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세상 이별하는 시간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며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갈아입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는 육신의 장막과 속히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찬송과 영광과 기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집입니다. 우리는 이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는 수고의 상급이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리고 존귀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으며, 주님의 칭찬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주안 에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는 복이 있습니다.

2.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범죄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합니다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이 풀의 꽃과 같습니다. 인생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인생은 나그네와 행인과 같습니다. 인생은 죽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나그네만 아니라 세상의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순례자는 목적을 가지고 왔고, 그 목적을 위해 살며 그 목적을 위해 가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믿음을 지키며 꽃과 같이 아름답게 살다가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본향을 준비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꽃은 떨어지되 열매 맺음으로 귀하고 인생이 나그네와 값있게 사는 것이 필요 하고, 순례자는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왔으니 하나님 앞에 서서 보고할 보고서를 만들 수 있는 고귀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3 . 흙으로 돌아가라 하심은 인생에게 장막의 집과 영원한 집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 장막은 임시요, 영원한 집은 항구적입니다. 장막은 육체를 가리킨 것이니 베드로와 같은 이는 이를 가르켜 벧후 1:14에 “내가 장막을 벗어날 때가 임박한 줄 알고……”라고 했고, 사 8:12에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거둠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하여 언젠가는 떠나야 할 육체관을 나타내었습니다. 장막은 견고한 기초 위에 세운 집이 아니라 조설모천의 임시적 구조임을 가리킵니다. 인생의 육신의 생활은 장막과 같이 일시적이요, 잠깐임을 말했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이요, 풀잎의 이슬 같은 인생이요, 하루살이같은 인생이요, 물거품같은 인생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장막은 임시적인데 반하여, 천국은 항구적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활은 비애와 고통과 탄식과 죄악 뿐이니 이 생활을 오래 하려면 오히려 저주요 비극일 것이며 임시적으로 잠깐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늘엔 피곤잖고 장생불로! 영생의 장생불로! 영원한 행복 속에 영원무궁 기쁨만 있는 곳입니다. (2) 장막은 무너지나 영원한 집은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습니다. 장막을 치는 데는 나무 몇 개와 포장 하나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기 쉽고 비바람이 쳐도 빗물이 새기 쉽고, 불이 나도 쉬 타버립니다. 누가 조금 건드려도 곧 무너져버리는 연약성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육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눈 에 보이지 않는 병균체만 들어와도 못 견디고 쓰려져 죽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집은 썩지도 않고 불타지도 않고 견고하여 영원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인간의 영혼이 가서 살 집입니다. 영원한 집은 세상의 인격으로도 무너뜨릴 수가 없고, 천변지재를 만나도 무너지거나 상하여질 염려도 없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십시오. 그곳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벽옥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같고 그 성의 성곽은 각각 기초석이 보석으로 꾸였는데 백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소벗,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지정들입니다. 그 열 두문은 열 두 진주이니 푼마다 한 진주로 되었습니다. 그 화려 찬란함은 가히 표현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3) 장막은 누구든지 되는 데로 살 수 있으나 영원한 집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장막은 누구든지 살 수 있고 선악간 구별없이 살 수 있습니다. 장막의 생활은 괴롭고 힘들고 평안을 맛볼 수 없고, 기쁨이 없으며, 탄식과 비애뿐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국집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수고와 고생이 없습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다가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순간에 “주 예수여 나의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입천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보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 컸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집은 좋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영원한 집을 예비하시려고 우리들 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예비해 놓으시면 다시 와서 우리들을 데려다가 같이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외롭게 있으면 쓸쓸하고 잠깐이면 그 후에 섭섭할 터인데 영원한 집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영원히 동거할 것이며 완전하고 참된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사모하는 곳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요, 제 2아담인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이 우리로 하여금 흙인 육신이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니 주님만이 참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임을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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