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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를 선용하라 (창 0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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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 생의 지혜요, 승리의 열쇠입니다. 기회가 지나간 다음에 애절한 탄식을 하는 것보다는 내게 주어진 때에 기회를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될 때에 동일하게 주어진 기회이건만 어떤 사람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도 하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기회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했느냐, 못 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있어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여 성공의 기회로, 승리의 기회로, 행복의 기회로, 은혜의 기회로, 축복의 기회로 선용해야겠습니다. 1. 축복의 기회를 선용하여야겠습니다 40주야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 뿐이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게다가 그 해 포도 농사까지 대 풍작이었으니 실로 축복 위에 축복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아깝게도 이 좋은 축복의 기회를 바로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포도주를 취하도록 마시므로 자신도 실수하고 그 아들 함도 실수케 함으로 축복의 기회를 저주의 기회가 되게 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을 때 방심하여 육체의 소욕만을 따르게 되면 실수하여 축복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축복의 날에도 거기에 취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소득이 늘어가도 사치해서는 안되며, 명성이 높아가도 영화에 취해서는 안되며, 정권을 잡아도 권력에 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름의 하루는 겨울의 열흘보다 더 많이 물건을 부패시킨다고 합니다. 만일 축복이 취하다 보면 내가 받은 축복 때문에 도리어 실패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칼한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기회를 선용하여 축복의 기회가 축복의 기회로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지혜있는 성도들입니다. 2. 봉사의 기회를 선용해야 하겠습니다 함은 봉사의 기회를 선용하지 못함으로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추태를 목격했을 때 그 아들 함은 자기 아버지를 위해 몇 가지 중에 적어도 한 가지 일을 했어야 할 것입니다. (1) 아버지를 깨워서 옷을 입도록 해야 할 것이며, (2) 자기가 직접 옷을 입혀 드릴 수도 있겠으며, (3) 이불로 덮어드려야 할 것이며, (4) 문 밖에 지켜 서서 외인의 출입을 금하여 아버지가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를 위한 좋은 봉사의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이 중의 어느 한 가지 방법도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오히려 밖으로 나아가 아버지의 추행을 폭로 공개 선전하는 패륜아 같은 악행을 서슴치 않고 감행하였습니다. 함은 아깝게도 아버지를 위한 봉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셈과 야벳처럼 아버지의 수치를 은밀하게 가려주었던들 그와 그의 자손이 축복을 받았을 것을 봉사의 기회를 조롱의 기회로 삼다가 저주를 불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보았을 때 그를 욕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남에게 공개하기 전이 자신을 돌아보아 그런 잘못이 없는가 반성하고 나도 고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그 사람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도리인 것입니다. 갈 6:1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내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마 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네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와 봉사의 기회를 선용해야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않으며,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선용하여 주님 앞에 설 때 칭찬과 상급을 받아야 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여 봉사하는 것이 소금의 직책을 가진 신자의 도리라 하겠습니다. 3. 용서할 기회를 선용하여야겠습니다 함의 소행은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얄미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어찌 함에게만 잘못이 있었겠습니까? 함을 잘못하게 한 것은 함이 아니라 바로 노아였습니다. 아들 함을 책망하고 저주하기 전에 노아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하고 철책하여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함의 불경은 사랑으로 관대히 용서했어야 아버지의 체면으로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아들 함과 그 자손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25절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이 때가 한 번쯤은 용서의 아량을 발휘할 좋은 기회였는데 아깝게도 노아는 이 기회마저 놓치고 사항하는 아들에게 저주를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적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때 형제를 사랑으로 용서할 기회를 만들 수 없겠습니까? 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죄인 괴수된 나를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의 참 아들딸이라면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함과 그 후손에까지 저주를 퍼붓고 말았습니다. 기회는 시간입니다. 기회도 금과 같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일생은 기회가 모여서 평생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교인은 주어진 기회를 선용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엡 5:15에 바울은 지혜있는 자의 생활은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뜻은 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기 때문에 기회를 사라는 뜻이고, 기회를 사라는 뜻은 기회를 만들라는 뜻이며, 기회를 만들라는 뜻은 기회를 보람되게 선용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지혜롭게 선용하여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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