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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을 찾습니다 (창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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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만민의 아버지요,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형제요 동포라는 것이 전 인류와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의 교훈입니다. 창세기를 읽으면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인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물으시기를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 때 가인이 대답하기를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합니다. 그 뜻은 형제가 어떻든지 자기에게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가인처럼 생각하는 가인의 후손이 동서양을 통해서 옛날도 있었고,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동양의 사상가 중에 양자같은 사람은 극단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서양에서도 니이체같은 분도 양자 철학에 못지 않게 극단의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면서 연대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은 각자 나뉘어 있지 않고 다 서로 서로 연결되어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연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헤어져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히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되어 있는 까닭에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사회의 구성원이 된 다음에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공동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서양 얘기에서 나오는 책 내용의 로빈손 쿠루소처럼 절해 고도에서 일생을 혼자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별 문제입니다. 우리 동양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대로 중국의 백이숙제 같이 수양산에서 나물만 캐어 먹으면서 살다가 죽는다면 별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없고 사회에 섞이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산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 연대성을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다 한 배에 타고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릇된 행동을 함으로써 배의 항해를 파괴한다면 그 배에 탔던 선객 전원에게 그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게 될 때 연대성을 생각하고 생활의 질서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상 생활에도 관계되는 까닭입니다. 내가 어떤 전염병으로 앓게 되면 나 혼자만 앓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이웃에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온 동네에 전염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창세기 18장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소돔과 고모라 성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만일 소돔 고모라 성에 의인 50명이 있다고 하면 그 의인 50명을 멸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사람들을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50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내려갔다가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을 위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인 10명 마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은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 성에 의인 10명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도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사실 악한 성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냥 놔두신 것은 그 가운데 그래도 의인이 다소 있는 까닭에 죄악이 관영함에도 불구하고 회개시켜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 죄인이 하나가 있다는 것은 이미 내 이웃에 콜레라 환자 하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콜레라 환자를 그냥 두면 점점 퍼져서 내 가족까지 콜레라 병으로 죽게 됩니다. 죄인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새 사람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나와 내 자손을 위해서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 선지자들처럼, 아브라함처럼,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은 의인을 찾고 계신다고 외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침묵이 곧 하나님의 침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시려고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웃이 병들어 있다면 빨리 치료하여 전염병이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이 있을 때 이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구원해야 합니다.

1. 의로운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민족은 자기 동족과 함께 고난에 동참할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조국을 끝까지 사랑합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는 일신의 영화와 안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이 범죄하여 벌을 받을 때 자신의 이름을 성경 책에서 제하여 버릴지언정 이 민족을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의로운 지도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로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누가 애국자입니까? 참된 지도자는 역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생존을 위하여 혼연히 수난의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민족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의로운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는 양심의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헨리 쏘오로는 “국가를 위한 봉사 중에 가장 큰 봉사는 양심으로 봉사하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진정 나라의 기둥같은 존재요, 민족과 국가생존의 구루터기 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태인의 강인한 애국심을 배워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의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배워야합니다. 바벨론 정복자들이 자기들의 연락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온의 노래를 한 곡조 불러 보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들은 강제 협박을 받으면서도 수금을 타지 않는 굳은 절개를 보여주었습니다(시 139편). 이와 같은 절개가 있었기에 그 민족이 보존되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조 말 민족의 애국지사인 이상재 선생님을 일본 총독부가 갖은 방법으로 매수하려 했으나 그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일본 형사가 한 번은 거액의 돈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을 가지고 시골에 내려가셔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남은 여생을 평안히 지내십시오” 하고 권유할 때 선생님은 돈 뭉치를 내던지며 “나는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으로 사십니까?” 하고 묻는 형사에게 “나는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이상재 선생님은 민족 양심으로 살아간 순수한 씨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렘 5:1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대도 예레미야가 환란하던 시대와 같지 않은가 반성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의로운 예언자를 찾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역사를 경고할 줄 아는 예언자를 찾고 있습니다. 참된 선지자라면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왕이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70년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어느 대학 교수의 양심적인 증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명하신 재판관이여! 본 피고인은 직업으로 말하면 대학 교수요, 정치적 이념에 있어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종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재판장이여! 한 시대의 신앙인의 사명은 양심대로 살고, 양심대로 증언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를 사명으로 알고 권력의 잘못을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고 그리스도인의 양심적인 증언을 계속할 것입니다. 재판장이여! 이 몸이 형무소 안에 있으나, 형무소 밖에 있으나 조국을 사랑하는 이 마음에는 변함이 없소! 아무 판결을 내려도 불만없이 승복하겠으니 지혜로운 판결을 내려주시오!” 라고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이런 양심의 증언이 기독교인 중에 있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타락한 목자들에게 “소경이요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고 탄식을 했습니다. 예언자의 사명을 우리 교회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심판시 그 피값을 교회가 지불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외쳐야 하겠습니다.

4. 회개하는 의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위정자로 부터 전 국민에 이르기까지 범죄한 나라요, 허물어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국민입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게 참회하는 민족이 되어야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저는 이 민족 앞에 죄인입니다. 이 민족은 저를 위해서 이렇게 위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배는 선배를 원망하고 우리 민족 불행을 타인의 책임에 돌리니 이 모든 것이 내 죄입니다. 우리 나라가 독립 못한 것도, 민족을 깨우치지 못했던 것도 다 내 죄입니다. 우리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바로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통곡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선지자들을 죽이고 내게 파종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속에서 무한히 깊은 동족애와 피맺힌 조국애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악하고 죄가 넘치니 더욱 의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교육이 없어서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인없는 나라와 민족은 망했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이요, 역사의 산 교훈입니다. 따라서 이 민족을 구원하고자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의롭게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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