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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아들 (창 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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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가족제도가 일부일처의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유다 남방 그랄에 우거할 때 아브라함에게는 사라라는 본부인과 하갈이라는 둘째 부인이 있었습니다. 사라가 낳은 아들은 이삭이요, 하갈이 낳은 아들은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을 계승할 아들이요, 하갈은 애굽 여자일 뿐 아니라 둘째 부인이며 그에게서 난 이스마엘 역시 서자이기 때문에 본부인 사라에게 무서운 학대와 멸시를 받은 것입니다. 하갈이 둘째 부인이면서 이스라엘을 낳은 후부터 본부인 사라를 무시하게 되었고 이스마엘 역시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희롱이란 원어로 “메사헥”인데 함부로 군다는 뜻입니다. 사라는 불타는 질투심으로 남편 아브라함에게 간청하여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일로 심히 근심하였으나 아내 사라의 간청에 견디지 뭇하여서 하는 수 없이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득히 아브라함은 어느 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 하갈에게 떡을 준비하여 주고 가죽부대에 물을 가득 채워 남방 광야로 떠나가게 하였습니다. 청천벽력같이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갑자기 쫓겨나가는 두 모자는 눈물만이 흐르고 천지가 캄캄하여 갈 일이 막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어린 아들을 이끌고 가죽부대와 떡 뭉치가 들어있는 보자기를 메고 광야의 길을 떠나가야만 했습니다. 가냘프고 나약한 이 여인은 아브라함과 눈물로 이별하고 길을 떠나가야만 했습니다. 가냘프고 나약한 이 여인은 아브라함과 눈물로 이별하고 길을 가려니 설음찬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고 두 다리는 무거워지고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을 외로히 걸어가야만 하였습니다. 뜨거운 뙤약볕만이 내려 쪼이는 불모의 땅 사막입니다. 시냇물도 없고 나무 그늘도 없는 곳입니다. 생명을 이을 아무런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죽음의 고장입니다. 이러한 곳으로 하갈과 어린 이스마엘은 추방된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정처없이 유리 방황하는 고통의 날은 하루 이틀 장기간 흐르고 이제는 먹을 음식물도 다 떨어지고 가죽부대의 물도 한방을 남지 않았습니다. 불타는 사막의 열풍은 불어 오고 목이 마르고 입이 타서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 뿐이었습니다. 죽음에 이른 하갈은 최후 방법으로 어린 아들을 떨기나무 그늘에 앉혀두고 자기 아들의 죽는 모습을 차마 볼수 없어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마주 앉아 아들을 멀리 바라보면서 방성대곡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 어린 아들을 위하여 자기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기에 나온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모자의 죄가 무엇입니까? 죄가 있다면 하나는 둘째 부인이라는 사실이요, 서자인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브엘세바의 축복을 허락해 준 것입니다.

1. 약속의 아들 이삭의 탄생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으며 사라는 90세였습니다. 히 11:11에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잉태하는 힘이 없고 죽은 자와 방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소망이 없는 가운데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는 약속하시는 그 분을 믿었기 때문에 잉태하는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 함은 아들 이름을 이삭 “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웃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복음 자체가 기쁜 소식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즐거움과 평강이 넘치는 종교입니다. 아브라함 장막에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기쁨과 즐거움의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게 되면 언젠가는 그 약속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받은지 30년만에 이삭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2. 이스마엘은 이삭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살 때 젖을 떼고 잔치를 베푼다고 합니다. 이 날 사라는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6세했습니다. 이스마엘의 성격은 들 나귀(창 16:12)처럼 거칠었습니다. 기업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이삭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에게 들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라엘을 내쫓으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로 인하여 깊은 근심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12절)고 지시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라의 간청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떡과 물 한 가죽부대 메워주고 장막을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한 것입니다.

3. 떨기 나무 교회와 에셀 나무 교회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메고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는 손을 잡고 피곤한 다리를 끌며 브엘세바 황막한 벌판을 헤메였습니다. 이것은 말세 교회의 상징입니다. 율법의 떡과 고행의 물 부대를 어깨에 메고 애쓰며 광야를 방황하지만 영원한 기업에 대한 보장이 없었습니다. 떡은 한정된 양식이요, 물은 한정된 음료였습니다. 먹다 마시다 보면 빈 광주리와 빈 부대만 남습니다. 하갈은 그동안 준비된 음식을 먹었으나 이제는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하갈은 자식을 떨기 나무 아래 두고 마주앉아 방성대곡 했습니다. 떨기나무란 덤불 숲이란 뜻입니다. 장차 유태인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유리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 흘릴 시온의 이름을 예표합니다. 그리하여 떨기 나무 교회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양과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고루 내리심같이 이스마엘 떨기나무 교회에도 축복의 기회는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도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에 대하여 (1)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17절). (2) 하갈아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고(17절). (3)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18절). (4)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시고(19절). (5)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20절). (6) 활 쏘는 자가 되게 하리라(20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는 아니었지만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결혼기가 되었습니다. 하갈은 애굽 여인을 취하여 그 아들에게 아내를 삼게 했습니다. 그 자신이 애굽인이므로 자부도 애굽 여인을 택한 것입니다. 율법 교회는 그 뿌리에서 난 대로 노예적 근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애굽인은 애굽적인 신앙 밖에 가지지 못합니다. 애굽식으로 자녀를 가르치고 애굽의 핏줄을 따라 인연을 맺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것이 떨기 나무 교회의 귀결점입니다. 표준적 교회는 일곱, 곧 완전한 교회를 이룹니다. 말씀의 우물, 곧 구원의 샘(사 12:3),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아 4:12)을 가진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목마른 자는 누구나 와서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브엘세바의 우물이 있는 것이 참 교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곱 개 우물 곧 맹세의 우물 곁에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에셀 나무란 실버들과 같은 나무라고 합니다. 브엘세바의 실버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아브라함은 맹세의 우물과 에셀 나무 교회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감사하며 여호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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