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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정받은 신앙 (창 2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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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은 성공의 바탕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큰 시험을 받고 그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시험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인신 제사는 이방인의 풍습입니다. 인정받는 신앙,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평 불만이 있음직 합니다. 그러나 일언반사의 불평 불만 한마디 없이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죽은 데서 살게 하실 줄을 믿었습니다. 인정받은 신앙이란 ?

1. 순종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순종이 없이는 기독교의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이 비극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순종 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첫 언약 때 범한 죄를 속하려고 새 언약으로 오셨습니다. 새 언약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는 순종만이 우리의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믿음이 복입니다. 억지로라도 순종하십시오. 억지의 순종은 눈물겨우나 나중에는 웃음이 따르고 만족합니다. 순종을 위한 현재의 고생은 내세의 재산이 있는 것입니다. 고생(苦生)이 고생(固生)이 되고 나중에는 고생(高生)이 됩니다. 고생이 많으면 성공도 크며 기쁨도 큰 것입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울지 말고, 하나님 때문에 울고 순종할 때 그의 생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나를 따르라”, “나를 따라 오려면 부모나 형제나 처자나 전답이나 재산을 버리고 자기까지 부인하고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언제나 “예”이지, “왜”, “아니요”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사울 왕이 제사를 핑계하고 불순종 할 때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순종자에게 언제나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제일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없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있나 보시려고, 친교를 맺으려고 무엇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내게 소중한 것이 아니면 도리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기만 합니다. 흠없는 양, 첫 새끼, 첫 열매 등은 귀중한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제일 귀중한 것은 이삭이었습니다. 둘도 아닌 하나 뿐인 외아들이었습니다. 다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둘도 없는 귀중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과부의 엽전 두닢을 귀히 여기시어 칭찬하셨으며,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붓고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때 만족하신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신 반의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 22:37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99%의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100% 신앙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고 섬겨야 합니다. 십일조는 쓰기 전에 먼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수 주일은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엿새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에도 신용얻으려면 자기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데 어찌 값싼 것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을 드릴 때도 가장 귀중한 시간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일제 말엽 신사참배로 핍박이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주기 철 목사님이 “이삭의 봉헌”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시면서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이삭을 봉헌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게 이삭이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게 재산이나 명예가 없으니 그것이 내게 이삭이 될 리 없고, 내 자식들이 이삭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 아내가 이삭이 되지도 않고 다만 늙으신 노모님이 계셔서 마음이 제일 괴롭지만 그래도 조모님이 내 이삭이 되지 않습니다. 내게 이삭이 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이 다섯 자 반이 넘는 내 육체가 핍박과 고문에 못이기며, 내 사랑하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 두렵다고 하시면서 눈에 이슬이 맺혔다 합니다. 주목사님은 아브라함처럼 육신의 축복까지 받지 못하였으나, 인간 면으로 생각해 보면 비참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상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희생을 우리에게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진정 마음 속에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부지 중에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더 생각하고 더 열중함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이삭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이삭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바치라고 명령하시고 때로는 강제집행으로 빼앗아 가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순종과 믿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실 것입니다.

3.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순교자를 복자(福者)라고 부릅니다. 순교자는 육신적으로는 비참하나 이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비단 순교를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를 위하여 최선의 것을 드리면 그것이 바친 자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쁨과 그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하나님에게 신앙을 인정받게 됩니다. 인생 길을 걸어 가는 데는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시험은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이길 때 시험은 물러가게 됩니다. 시험은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게 됩니다. 어느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은 회사에서 신망받는 기술자였습니다. 어느날 제품이 딸려 야간 작업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모자라서 주일까지 작업을 강요 당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청년을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사표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웃 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채용하였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직장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성실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시험을 두려워 맙시다. 시험은 축복보다 먼저 찾아오는 안내자입니다. 그런데 대개는 이 안내자를 거절하고 맙니다. 우리는 시험이 올 때 담대하면 능히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 인정도 받는 보물이 됩니다. 시험이 크면 클수록 축복도 크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신앙을 가집시다.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길은 인정받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때 번영의 축복을 받았으며,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자손 만대까지 언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 못 도우심이 아니요,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연고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인정받는 신앙을 배웁시다. 하나님 외는 아무 것도 없는 신앙, 절대 순종의 신앙, 하나님께 다하는 신앙, 모든 시험을 이기고 일어서는 신앙으로 전진합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약 1:12에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시험당하는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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